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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맛의 고기튀김… 직장인의 ‘점심 피난처’[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동아일보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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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당주동 ‘가봉루’의 고기튀김. 소(小)자는 2만2000원, 대(大)자는 3만3000원이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서울 종로구 당주동 ‘가봉루’의 고기튀김. 소(小)자는 2만2000원, 대(大)자는 3만3000원이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김도언 소설가

김도언 소설가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 골목 안쪽. 오피스 빌딩과 관공서가 서늘한 위엄을 드러내는 거리 한쪽에 화상이 운영하는 오래된 중국집 ‘가봉루’가 있다. 간판만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지나쳤을 법한, 특별히 눈에 띄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집이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이곳이 왜 반세기 넘게 이 자리를 지켜왔는지 이유를 능히 짐작하게 된다.

가봉루는 1972년 처음 불을 밝혔다. 아마도 당연히 그 시절 광화문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경복궁 관내에 중앙청이 자리 잡고 있었고, 동아일보 기자들은 1926년 지어진 사옥(현 일민미술관)에서 일하며 사회적인 불의와 권력의 음험한 욕망을 섬세한 눈으로 톺아보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높은 빌딩도, 세련된 카페도 거의 없던 때 뜨거운 웍질 소리와 달큼한 양파 냄새를 풍기며 문을 연 작은 중국집은, 어쩌면 당시 직장인들에게 점심의 피난처 같은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맛과 사람 냄새가 50년이 넘도록 이어져 노포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가게가 됐다.

가봉루의 맛은 화려한 중식당의 그것과는 다르다. 짜장면은 양파를 듬뿍 넣어 되직하지 않게 볶아내고, 짬뽕 국물은 시원하면서 담백하다. 간이 잘 밴 면의 식감도 일품이다. 이 집 대표 메뉴랄 수 있는 고기튀김은 파기름을 써 기름 냄새는 없으면서 바삭한 식감이 바투 느껴지는 정직한 맛이다. 고기를 튀겨 내온 모양새만 보면 탕수육과 비슷해 보이지만 부어 먹거나 찍어 먹는 소스 없이 초간장에 찍어 먹어야 한다. 물리지 않고 계속 입맛을 당기는 게 이 집만의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도심 속 회색 빌딩 속에서 빠듯한 사무에 지친 식객들에게 이 집은 정서적인 안정감을 안겨준다. 가봉루에 앉아 짜장면이나 짬뽕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문득 이런 생각이 시나브로 밀려온다. ‘지금까지 나, 열심히 잘 살아오고 있는 것 맞지? 그래, 고생했어. 다시 힘내서 달려보자.’ 세월과 함께 간판 색이 바랜 노포는 역시나 그 세월 함께 나이를 먹어온 식객에게 이런 푸근한 성찰과 다짐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필자에게 가봉루는 ‘낮술이 가장 맛있는 중국집’으로 기억된다. 거개의 술꾼들은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술 생각에 몸이 달뜨기 마련이다. 과거 세종문화회관 옆 골목에서 영업을 하던 때는 2층 홀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조망이 가능했던 가봉루는 그런 날 술꾼들의 감성을 더할 나위 없이 자극했다. 필자 역시 날씨가 잔뜩 흐리고 빗방울이라도 듣기 시작하면 가봉루 창가 자리에서 간짜장이나 고기튀김에 소주를 마시곤 했다. 정부청사와 고궁이 함께 자리한 광화문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모던한 감각과 고풍스러운 추억을 함께 일깨우며 먹는 가봉루의 낮술이란(현재 업장도 3층에 위치해 있다).

광화문 일대가 거대한 오피스촌을 이루면서 이 부근엔 가봉루 말고도 이름난 중국집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광화문의 샐러리맨들은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단골 중국집들을 정해 놓고는 자기가 좋아하는 집을 옹호하는 논쟁도 심심찮게 벌인다. 그러니까 ‘가봉루파’도 있고 ‘진아춘파’도 있고 ‘천궁파’도 있고 ‘동성각파’도 있다. 이 중국집들은 저마다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낮술을 즐기는 술꾼에게 가봉루만 한 에스프리(Esprit)를 안겨주는 집은 단연코 없다. 단, 호젓하게 낮술을 즐기려면 피크타임은 피해야 한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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