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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의 축소판, 교토 최고의 두 정원[정성갑의 공간의 재발견]

동아일보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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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일본 교토 여행을 다녀왔다. 주제는 ‘정원’이었다. 건축가와 조경가도 함께한 여행이라 내심 기대가 컸다. 10여 년 전 교토의 금각사와 은각사, 청수사의 정원을 둘러본 적이 있지만, 무지렁이 때의 일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여행은 정원에 담긴 일본의 미학이 한국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 또 내 선입견과는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알게 된 시간이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사이호지(西芳寺)였다. 정원 전체에 120여 종의 이끼가 덮여 있어 ‘이끼 정원’으로 불린다. 중앙 연못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거닐며 정원을 감상하는 지천회유식 정원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개울과 경사를 따라 구릉처럼 펼쳐지는 정원은 발길 닿는 곳마다 초록 이끼로 뒤덮여 있었고, 단풍나무는 빨갛고 노란 군락의 풍경을 만들어 냈다.

흔히 일본 정원이라고 하면 인공적이라는 설명이 공식처럼 따라붙는다. 과연 그럴까?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한 번도 인간에게 들키지 않은 채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자연이다. 그것을 ‘인공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 그런 극락의 정원이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 존재할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출입 금지 구역을 나누는 낮은 구조물이었다. 대나무로만 만들었는데 왼쪽과 오른쪽에서 오는 대나무의 굵기가 다르고, 그 둘이 만나는 지점에서는 얇게 켠 대나무를 구부려 걸쇠처럼 걸어 놓았다. 송곳 같은 정교함이 묻어나는 디자인이었다. 다실 역할을 하는 작은 집의 디테일도 놀라웠다. 대나무 구조물을 앞으로 뺐는데, 다름 아닌 빗물받이였다. 처마에서 떨어진 빗물이 그 앞으로 댄 대나무를 따라 졸졸 흐르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아래쪽으로 모여드는 구조는 뒤쪽의 건물과 한 몸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동행한 건축가가 말했다. “이런 말이 있어요. 돌 열 개를 받으면 일본인은 아홉 개를 똑바로 놓고 한 개를 비스듬히 놓는 반면, 한국인들은 아홉 개를 자유롭게 놓고 한 개만 똑바로 놓는다고요. 이건 우열의 문제가 아니에요. 저마다 아름다운 지점이 있으니까요.” 일본인들은 집을 지을 때 구부러진 나무는 쓰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구부러진 나무도 한두 개씩 보였다. 극도로 예민하게 접근할 뿐, ‘자연미’는 그들의 지향점이기도 했다.

다음 날에는 왕실 정원인 가쓰라리큐(桂離宮)에 갔다. 관람 인원을 제한하는 까닭에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 오전 10시경 입장했다. 이곳 역시 지천회유식 정원이었는데, 그 깊이와 기품이 탁월했다. 하늘과 연못에 비치는 달을 낭만의 중심에 두고 나룻배를 띄우고, 차를 마시고, 참외밭을 구경하고, 기도를 올리는 건물이 흩뿌려져 있는 모습이라니. 참선과 고독, 풍류와 명상, 놀이와 교류가 모두 담긴 완벽한 소우주라 할 만했다.


정원이 왜 럭셔리의 끝인지도 실감 났다. 분명 현실이되, 어쩌면 천국보다도 더 생생하고 아름다운 세계. 모든 것을 다 가진 일왕쯤 되면 그다음에는 달을 갖고 싶어지는구나 싶었다. 정원과 물가에 정교하게 배치한 24개의 석등, 자연석과 마름돌을 섞어 만든 돌길 등 안목의 깊이가 느껴지는 디자인이 곳곳에 가득했다. 우리가 어머니 같은 정원을 꿈꾼다면, 그들은 저 너머 신들의 정원을 추앙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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