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솅겐협정(Schengen Agreement) 지역에서는 여권 없이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다는 것이 이젠 많이 알려졌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아일랜드를 제외한 26개국, 비회원국 중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의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노르웨이, 스위스 4개국을 합쳐 30개국이 솅겐 지역이다. 이곳에선 가맹국 국민뿐만 아니라 역내 입경(入境)한 비가맹국 주민도 원칙적으로 자유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역외 방문자에겐 큰 매력이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최근 한·일 상의(商議)회장단 회의에서 솅겐 지역처럼 한·일 간 여권 없는 왕래를 제안했다. “한·일을 오가는 관광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동시에 방문하는 외국인이 늘어 양국에 좋을 것”이라는 것이다. 일한경제협회장인 고지 아키요시(小路明善) 일본 경제단체연합회 부회장도 지난 6월 한·일 협력의 미래구상과 관련해 “여권 없는 왕래가 꿈”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일은 유럽과 달리 사실상 섬과 섬의 관계다. 해저터널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육로 왕래가 불가능하다. 양국 국내 항공기, 여객선 탑승 때처럼 간단한 신분증 제시 정도만 필요하다면 양 국민의 보다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면서도 국경 검문 없는 솅겐 지역보다는 치안 관리도 수월할 수 있다. 물론 역내 입경 외국인도 포함하기 위해선 출입국·세관·경찰 등 협력의 강화와 공통시스템의 구축 등 숙제가 적지는 않다.
재화와 용역의 자유로운 이동을 전제로 하는 자유무역지대 형성, 시장 통합은 결국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이 불가피함을 보여줬다는 것이 EU 통합의 역사다. 선도자가 역사를 개척한다. EU 모태인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의 최초 6개국 중 독일,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5개국이 솅겐협정 주창국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일본 주도의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참여하려 하고, 양국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도 다시 거론되는 시대다. 한·일은 아시아에서 민주주의, 시장경제, 자유무역의 가치를 착실히 실천해온 몇 안 되는 이웃이다. 양국 정부는 ‘여권 없는 왕래의 꿈’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김청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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