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남정훈 기자]배구를 취재하다보면 감독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리시브가 중요하다”, “리시브가 되지 않아 졌다” 등등. 공격의 첫 걸음인 리시브가 잘 되어야 세터가 오픈 토스가 아닌 속공이나 시간차, 이동 공격 등의 세트 플레이를 구사할 여유가 생긴다. 이는 곧 상대 블로커들이 2~3명이 따라붙을 틈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18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도로공사와 현대건설의 2025~2026 V리그 여자부 3라운드 맞대결은 리시브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을 수 있는 경기였다. 바로 세터의 올바른 의사 결정, 결국 배구는 ‘세터놀음’이라는 것.
1세트 현대건설의 리시브 효율은 20%. 리베로 김연견마저 리시브 효율이 12.5%(2/8, 서브득점 1개 허용)에 불과할 정도로 현대건설의 리시브는 크게 요동쳤다. 반면 도로공사의 리시브 효율은 45.45%였다. 리시브 효율만 보면 도로공사의 완승으로 끝났어야 할 1세트다. 그러나 현대건설이 시종일관 리드를 유지한 끝에 25-20으로 이겼다.
이유는 간단했다. 리시브된 공을 받아 공격수들에게 배분하는 세터들의 레벨 차이가 너무나 확연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의 세터는 국가대표 주전 세터 김다인이다. 김다인은 리시브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공격수들이 때릴 수 있는 공을 올려줬다. 카리는 김다인의 토스를 받아 1세트에만 10점을 몰아쳤다. 김다인이 올린 공을 지켜보며 ‘엥?’이라고 의문이 들만한 토스가 단 1개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오랜만에 주전 세터로 출전한 도로공사의 2년차 김다은은 꽤 양질의 리시브가 주어졌음에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공격수들의 상황을 살피지 못하고 자신만의 생각대로 올렸다가 모마가 차마 스파이크를 하지도 못하고 토스로 상대 코트를 공을 넘겨주는 장면이 왕왕 나왔다. 1m98의 카리가 지키고 있는 오른쪽으로 공을 올렸다가 블로킹을 당하기도 했다. 상대 블로커가 낮은 쪽을 공략하라는 기본을 망각한 토스 배분이었다.
결국 1세트 공격 성공률은 현대건설 42.86%, 도로공사 32.50%로 10% 이상 벌어졌다. 블로킹 득점 역시 4-2 현대건설 리드. 현대건설이 1세트를 가볍게 잡아낸 건 당연한 결과였다.
2세트 양상도 다르지 않았다. 2세트에도 현대건설은 김연견이 리시브 효율 0%를 기록하는 등 전체 팀 리시브 효율이 15.79%로 더 떨어졌다. 문제는 그나마 리시브에서는 선방하던 도로공사도 리시브 효율이 26.09%로 곤두박질쳤다는 것. 2배 높은 리시브 효율로도 이길 수 없었는데, 격차가 10% 정도로 좁혀졌으니 세터 차이는 더욱 두드러졌다. 김종민 감독이 2세트 들어 선발 세터를 이윤정으로 바꿨으나 이윤정의 토스 배분도 흔들리기는 매한가지였고, 다시 김다은을 투입해야 했다. 반면 김다인은 늘 푸른 소나무마냥 흔들리는 리시브에도 매번 합리적인 운영을 선보였고, 2세트 역시 현대건설의 25-19 승리였다.
3세트는 김다인에 의존한 현대건설의 경기력에 한계가 왔다. 세트 초반부터 리시브가 흔들리며 크게 뒤졌다. 결국 강성형 감독은 8-15에서 카리와 이수연, 김다인과 나현수를 바꾸는 ‘더블 스위치’를 가져갔고, 세트 끝까지 이를 유지했다. 3세트 현대건설의 리시브 효율은 12.5%에 불과했다. 반면 도로공사는 다시 38.10% 반등했고, 세트 막판 현대건설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며 셧아웃 패배를 막아냈다.
그러나 경기는 4세트에서 끝났다. 도로공사의 ‘세터 리스크’가 다시 발현됐기 때문이다. 세트 초반 연속 6점을 내주며 승기를 내줬고, 김종민 감독은 1-5에서 다시 세터를 이윤정에서 김다은으로 바꿔야 했다. 그러나 김다은도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리시브가 잘 되어 올라와도 속공 토스를 너무 낮게 올려준 나머지 김세빈의 공격은 엔드라인을 크게 벗어났다. 그러자 곧바로 김종민 감독이 타임아웃을 불러 김다은에게 강한 질책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경기 전 김종민 감독이 “시즌 전부터 현대건설의 김다인이라는 워낙 좋은 세터를 보유하고 있어서 어려운 상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는데, 이날 경기가 딱 김다인과 이윤정-김다은 간의 격차가 현저하게 벌어져있음 체감한 한 판이었다.
세트 중반부터 도로공사는 전의를 상실했고, 현대건설이 4세트를 25-13로 가볍게 따내면서 이날 경기를 세트 스코어 3-1(25-20 25-21 21-25 25-13)으로 끝냈다. 파죽의 5연승을 달리며 승점 3을 고스란히 챙긴 2위 현대건설은 승점 32(10승6패)가 되며 선두 도로공사(승점 35, 13승3패)와의 격차를 1경기 이내로 줄였다.
김다인의 양질의 토스를 받은 카리가 양팀 통틀어 25점(41.30%)을 올리며 모마(21점, 32.81%)와의 외인 싸움을 압도했고, 정지윤(16점), 자스티스(14점), 양효진(14점)까지 주전들이 고른 활약을 보였다. 반면 도로공사는 모마(22점)와 강소휘(13점), 타나차(11점)의 삼각편대가 두 자릿수 득점엔 성공했지만, 불안한 경기력을 극복할 순 없었다.
수원=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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