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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사령관 진술번복, 이래서 전담재판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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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 1년, 법정 풍경은 점점 기묘해지고 있다.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거나 한두 마디씩 쥐어짜던 이들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말을 바꿔가며, 내란의 우두머리 피의자인 윤석열을 감싸는 방향으로 줄을 맞추고 있다.

계엄이 실패하자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먼저 부하들의 입부터 틀어막으려 했다. 정치인 체포 대상 명단은 애초 없었다는 쪽으로 말을 맞추기 위해, “팀별로 똑똑한 요원 1~2명씩 뽑아 연습을 시키라”고 지시하며 사실상 조직적인 ‘증언 통제’에 나섰다. 그러나 방첩사 영관급 팀장들은 “팩트에 기반해야 한다”며 사령관의 서류 파기 지시에도 끝내 응하지 않았고, 그 덕에 정치인 14명 체포 명단, 체포조 편성, 구금시설 준비의 실체가 차례차례 드러났다.

그런데 정작 법정에 선 여인형은 “체포·검거 같은 말은 군인들 입에 밴 말”이라며, 정치인 체포조 운영 의혹을 부인하는 취지로 “실제 체포 지시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위치 파악·신병 확보 필요성을 군사적 관용어로 표현하다 보니 ‘체포’라는 단어를 쓴 것”이라고 수습했다. 부하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기록과 증언 앞에서, 최고 지휘관의 참담하고도 처참한 자기 파괴다.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의 말 바꾸기는 한 단계 더 노골적이다. 그는 그동안 윤석열이 “본회의장 문을 부수고 국회의원을 끌어내라” “4명이 1명씩 들쳐업고 나오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검찰과 군사법원에서 진술해왔다. 그런데 최근 법정에서는 이런 지시가 윤석열이 아니라 자신이 부하들에게 한 말이었는데, 그게 왜곡·착각돼 기록됐다는 식으로 진술을 뒤집었다. 문제는 이진우의 증언이 애초부터 ‘자발적 양심고백’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의 전속부관 오모 대위가 계엄의 밤, 비화폰을 통해 윤석열로부터 국회의원 체포 지시가 하달되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해왔고, 운전관 역시 같은 증언을 했다. 이에 마지못해 사실을 인정했던 사령관은 다시 “내가 했던 말이 대통령 발언으로 둔갑한 것”이라며 책임의 축을 옮기고 있다.

김현태 전 707특임단장의 궤적 역시 비슷한 궤를 그린다. 계엄 직후 눈물의 기자회견에서 그는 “707부대원들은 김용현 전 장관에게 이용당한 피해자”라고 규정하며, 자신이 197명 병력을 이끌고 국회의사당에 난입했고 “국회 내 의원이 150명 넘으면 안 된다”는 취지의 지시를 윗선으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국회를 비살상무기로 진압·봉쇄하라” “국회의원 등 인원을 끌어내라”는 구체적인 명령이 있었다는 말과 함께, “모든 책임은 지휘관인 나에게 있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그러나 올해 2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증인석에 선 김현태의 입은 달라져 있었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이 “150명 넘으면 안 된다는데 들어갈 수 없겠냐” 정도로 말했을 뿐, ‘끌어내라’ ‘국회의원’이라는 단어는 없었다고 말한 것이다.


이 세 사례를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된 패턴이 뚜렷하게 보인다. 계엄 직후와 수사 초기, 지휘관들이 어느 정도 진실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던 것은 고귀한 양심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부하들의 증언과 문서, 통신 기록이 실체를 밀어 올리고 있었고, 그 앞에서 사령관들의 전술적 후퇴였다. 처음에는 진실의 부력이 이들을 수면 위로 떠밀어 올렸다면, 윤석열 탄핵이 지연되고 형사재판이 지리멸렬해질수록 이들은 다시 진실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올해 3월, 희한한 구속기간 계산에 의한 윤석열 석방 조치는 이들에게 결정적인 ‘신호’였을 것이다. 법 기술만 잘 구사하면, 시간을 잘만 끌면, 다시 기사회생할 수 있다는 잘못된 학습효과를 얻게 된 셈이다. 내란과 외환에 관한 죄는 헌법상 특별하게 다루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 법정에선 일반 형사범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절차 속에 섞여 들어가면서 그 특별함이 거의 휘발돼버렸다. 그러니 노상원 같은 핵심 가담자가 법정에서 “귀찮아서 답변하지 않겠다”는 식의 허세를 부리고, 김용현은 방청석 지지자들을 향해 두 손 엄지를 치켜세우며 여유를 과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현실은 내란·외환 사건에 대해 특별재판부든 전담재판부든, 지금 이 순간에도 집중 심리체계가 왜 필요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재판부를 상대로 손바닥 뒤집듯 진술을 번복하는 지휘관들, 거의 1년째 진술거부권 뒤에 숨은 중요 가담자들에게 지금의 법정은 권위를 상실했다. 국가의 존립에 관한 범죄를 심판함에 있어 지연된 정의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사령관들의 말 바꾸기야말로, 왜 그런 제도적 장치가 더 늦기 전에 필요했는지를 증언하고 있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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