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외과 의사인 김 원장은 외국인 환자들로부터 수술비를 현금으로 받아 이중장부를 작성하는 방법으로 수입을 줄여 세금을 신고해 왔다. 그런데 퇴직한 간호사가 국세청에 탈세 제보를 하였고, 관할 세무서장은 조세범칙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과정에서 김 원장은 담당 세무공무원에게 선처를 구하면서 “퇴직한 간호사가 제보한 것처럼 숨긴 매출액은 50억원이 맞다”고 진술했다. 세무공무원은 그 진술을 범칙혐의자심문조서(이하 ‘이 사건 심문조서’)에 기재하였다.
얼마 뒤 김 원장은 조세포탈죄로 기소되었고, 검사는 이 사건 심문조서를 증거로 제출하였다. 실형 선고를 우려한 김 원장은 법정에서 “세무공무원의 강압 수사 때문에 허위진술을 하였다. 세무공무원이 작성한 이 사건 심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으므로 판사가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얼마 뒤 김 원장은 조세포탈죄로 기소되었고, 검사는 이 사건 심문조서를 증거로 제출하였다. 실형 선고를 우려한 김 원장은 법정에서 “세무공무원의 강압 수사 때문에 허위진술을 하였다. 세무공무원이 작성한 이 사건 심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으므로 판사가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문증거 배제법칙이란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판사는 피고인의 말을 직접 듣고 재판해야 한다. 제3자가 피고인의 말을 들은 뒤, 나중에 판사에게 말이나 서류로 전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이를 전문증거(hearsay evidence) 배재 법칙이라 한다. 예외적으로 실체 진실 발견을 위해 법이 예외를 인정한 때에만 그런 서류나 제3자의 말을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있다. 이해를 위해 조금 다른 예를 들어보자.병철이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고 가정하자. 병철의 친구 철수가 영희에게 “내가 범인이다”라고 말했다. 영희는 서류에 철수의 그 말을 그대로 적었다. 영희가 작성한 서류에는 철수의 자백이 담겨 있지만, 판사는 그 서류를 근거로 철수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할 수 없다. 서류에 적힌 것 처럼 철수가 실제 그런 말을 했는지, 영희가 잘못 들었거나 과장한 것은 아닌지, 판사가 직접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영희가 법정에 나와 선서를 한 뒤 “내가 들은 철수의 말을 그대로 적었다”고 증언하고, 다른 증거들에 의해 영희가 철수의 말을 그대로 적었다고 인정되면, 철수가 법정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다퉈도 그 서류는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판사가 그 서류를 읽어볼 수 있다는 뜻이지, 그 서류에 기재된 내용을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그런데 영희가 경찰이나 검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래전 우리나라에서는 경찰의 고문이나 강압수사가 심각한 문제였다. 이 역사적 경험으로 형사소송법은 경찰이 혐의자의 진술을 듣고 기재한 서류(‘피의자신문조서’)는 피의자가 법정에서 그 내용을 인정할 때에만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경찰이 자백을 강요하면 일단 자백을 해고문을 피한 후 법정에서 다투라는 취지였다. 철수의 자백이 기재된 서류가 경찰인 영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라면, 철수가 법정에서 그 내용이 허위라고 주장만 하면 증거 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판사는 그 피의자신문조서를 볼 수가 없다는 뜻이다. 과거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피고인이 그 내용을 부인해도 증거로 쓸 수 있는 예외가 있었지만, 2020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 역시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처럼 피고인이 내용을 부인하면 증거능력이 없게 되었다.그렇다면 세무공무원이 조세포탈죄 등을 조사(‘조세범칙조사’)하는 과정에서 혐의자를 심문하면서 작성한 심문조서는 어떨까? 조세범처벌 절차법은 지방검찰청검사장이 지명한 세무공무원이 조세범칙조사를 하고, 그 세무공무원은 혐의자 또는 참고인을 심문하거나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조세범칙조사를 하는 세무공무원의 권한은 체포·구속에 관한 권한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일반사법경찰이나 특별사법경찰과 비슷하다. 그런데 특별사법경찰의 범위를 정하고 있는 사법경찰직무법은 세무공무원을 특별사법경찰로 정하고 있지 않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법경찰직무법 등의 규정을 중시하여 세무공무원이 작성한 심문조서를 수사기관이 작성한 조서와 동일하게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이 내용을 부인하였다는 점만으로는 증거능력을 부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대법원 2022. 12. 15. 선고 2022도8824 판결). 사례에서 세무공무원은 특별사법경찰이나 수사기관이 아니므로 김 원장이 법정에서 범행 자백이 기재된 이 사건 신문조서의 내용을 부인해도 세무공무원이 법정에서 “김 원장이 말한 그대로 이 사건 심문조서에 적었다”고 증언하는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이 사건 심문조서는 김 원장의 조세포탈죄를 증명하는 유력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
조세범칙조사에서 유의할 점
이처럼 조세포탈 사건에서는 혐의자나 피의자가 세무공무원에게 한 진술이 경찰이나 검사에게 한 진술보다 유무죄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조세범칙조사를 받게 되었다면 자신이 세무공무원에게 한 말이 형사재판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사실 그대로 신중하게 진술할 필요가 있다.※ 본 내용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이 없음
허승 판사
세법, 공정거래법에 관심을 갖고 현재 한국세법학회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술로는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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