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13조 원에 달하는 국내 송전망 구축 비용의 일부를 국민펀드로 조달하는 방안을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담기로 했다. 송전망 건설·보수 비용을 전담해온 한국전력공사의 부채 규모가 205조 원이 넘는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이재명 대통령은 1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후에너지환경부 업무보고에서 “부채가 많은 한전이 송전망 비용을 부담하기 어렵다면 국민펀드를 만들어 일정 수익을 보장해주고 국민들에게 투자 기회를 주면 좋겠다는 게 저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질의에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12차 전기본에 국민펀드 조성 방안을 담겠다”고 답변했다. 다만 기존 국민성장펀드를 활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펀드를 조성하는 것인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은 송전망 민영화를 우려하는 지적에는 “민간이 직접 운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한편 기후부는 낮 시간대 태양광 발전량이 남아도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산업용 전기세에 계절별·시간별 요금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주말 낮 요금을 인하하고 평일 밤 요금을 인상해 산업 전력수요를 낮 중심으로 유도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전력망 인프라 구축에 국민펀드도 활용하기로 한 것은 인공지능(AI) 혁신과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대전환의 성패가 전력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 중심으로 전력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권역별 송배전량이 덩달아 늘어나는데다 신규 발전소가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편중되면서 일방향이던 기존 송배전망을 양방향 분산식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100GW 수준으로 늘려 핵심 발전원으로 활용할 예정인데 송전망이 제때 구축되지 않을 경우 스페인과 같은 블랙아웃(대정전)이 올 가능성도 있다.
김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금은 화석연료 시대의 송배전망을 재생에너지 시대에 맞는 지능형 양방향 전력망으로 바꿔야 할 때”라면서 “한전이 그동안 송배전망 유지·보수를 위해 대략 매년 5조~7조 원을 투자해 왔는데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실제 전력 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서해안 고압직류송전(HVDC)망 단일 사업에만 12조 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한전은 부채 규모가 205조 원을 넘어서면서 재정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한전의 재정 조달 수단은 사실상 전기요금 수입과 채권 발행뿐인데 전기요금 수입은 전액 부채 상환에 투입해야 하는 형편이다. 한전채는 대규모로 발행할 경우 채권시장을 교란하는 문제가 발생해왔다. 정부가 송배전망 구축에 민간 재원을 끌어다 쓰려는 것은 이 같은 사정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민펀드가 송전망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한전이 공기업으로서 독점해왔던 송전 사업이 민영화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김성 장관은 “건설 과정에서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라며 “운영은 한전이 하게 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날 기후부 업무보고는 원자력 관련 학술 토론회를 방불케 할 정도로 분위기가 달아오르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주요 실무 기관장들과 열띤 토론을 벌인 데 이어 원자력 분야와 관련된 ‘팩트체크’를 했다. 이 대통령은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부피가 많이 줄어든다는 것이 사실이냐, 아니라고 하는 전문가도 있더라”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에 최원호 원자력안전위원장은 “부피가 5분의 1 정도로 줄어든다”고 답한 반면 조성돈 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은 “처분장 면적은 그리 줄지 않는다”며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다. 경수로 원전에서 나온 핵연료만 한정해서 볼지, 중수로 원전에서 발생한 것까지 포괄하는지에 따라 답변이 갈린 것이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놓고 전문가들이 답하는 상황에서도 이처럼 의견이 갈리자 이 대통령은 과학적인 토론이 중요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같은 상황을 지적하며 “정치적 의제화 해서 싸우면 진실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이렇게 해선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정책과 같이 전문적인 영역은 이념보다 실리에 입각해 집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기후부는 업무보고에서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목표 달성을 위해 햇빛·바람소득마을 조성, 영농형태양광특별법 제정 등을 진행하는 한편 일회용 컵 및 플라스틱 빨대 규제도 강화하기로 했다.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 개편 방안도 거론됐다. 태양광발전량이 넘치는 낮 시간대에는 전기를 싸게 공급하고 화력발전소와 원전이 주력인 밤 시간대 요금은 높이는 방식이다. 계절·시간별로 전기료를 차등하는 계시별 요금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내년에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에 준하는 수준의 대규모 지원금을 지방 이전·투자 기업들에 지급하기로 했다. 정부는 내년 2월에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5극 3특 권역별 성장 엔진 산업’을 확정하고 이 산업에 규제·인재·재정·금융·혁신 등 성장 5종 세트를 집중 지원하기로 했는데 이때 한국형 IRA 보조금인 ‘성장 엔진 특별보조금’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업무보고에서는 한수원이 미국 웨스팅하우스(WEC)와 지식재산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맺은 불공정 협정 문제도 거론됐다. 이 대통령은 “한수원이 WEC와 원전 기술 때문에 이상한 협약을 맺었다는 말이 있었는데 미국 기업은 왜 한국 기업들에 횡포를 부리는 것이냐, 특허 유효기간은 끝난 것 아니냐”고 질의했다. 김용선 지식재산처장은 “WEC의 기술은 특허가 아닌 영업 비밀이라 무기한으로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주재현 기자 joojh@sedaily.com조윤진 기자 j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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