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
코로나19가 창궐한 시절을 돌이켜 보면 어이없게 느껴지는 장면이 적지 않다. 많은 정보와 고등교육을 받은 사회가 과연 얼마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응했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공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당시는 감염병에 대한 이해보다 막연한 두려움과 책임을 피하려는 정책들이 일상의 행동을 규정한 순간들이었다. 감염병은 단 한 번의 노출로 100% 감염되는 운명적인 사건이 아니다. 병원균에 노출되는 시간과 강도, 그리고 개인의 면역상태라는 복합적인 요인 속에서 확률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은 그때 충분히 이성적으로 설명되지도, 사회적으로 공유되지도 않았다.
마스크 착용을 둘러싼 혼란이 단적인 예다. 마스크는 본질적으로 감염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간단하지만 효율성이 높은 보조적 방어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고 전능한 방법인 양 호도됐다. 우리는 마치 마스크만 쓰면 모든 위험이 차단되는 것처럼 오해했고 동시에 타인에게 집단주의적 이데올로기로 마스크 착용을 강요했다. 의학적으로 보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 자체가 이미 감염원이다. 그런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그 사람의 손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바이러스 전파가 충분히 가능함에도 마스크만 쓰면 안전한 것처럼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다. 실외에서도 마스크를 벗지 못하게 한 상황은 지금 생각해도 한심한 행정조치였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어떤 전문가도, 의사도 공개적으로 행정조치의 불합리성을 지적하지 않았다. 아침에 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같은 차를 타고 공항에 도착한 한 가족이 식당에서는 2명씩 나뉘어 밥을 먹어야 했다. 이런 해프닝은 위험평가보다 형식적 규정이 일상을 지배했음을 보여준 한 예에 불과하다.
당시엔 엘리베이터 버튼조차 위험요소로 취급됐다. 버튼 위에 감염방지용 항균테이프를 붙였고 이쑤시개나 열쇠로 버튼을 누르라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기도 했다.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손가락의 두꺼운 피부조직은 바이러스의 침투를 1차적으로 막을 수 있는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부접촉만으로 감염이 쉽게 이뤄진다는 인식이 비이성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공포는 괴담이 돼 퍼졌다. 감염자가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시설을 폐쇄하기도 했다.
어떤 공공시설에선 비데 사용시 발생하는 에어로졸이 감염을 유발할 수 있다며 비데를 전면 철거한 사례도 있었다. 지금도 문 손잡이를 손으로 잡지 못하고 발로 문을 여는 사람, 비닐장갑을 낀 채 공공장소를 다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감염병을 막기 위해 과도한 시도를 하는 것 자체를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미지의 바이러스 앞에서 사회가 최대한의 안전을 추구하려는 태도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과정에서 과학적 근거와 비례의 원칙이 사라졌을 때다. 공포는 과잉대응을 낳고 그 과잉대응은 다시 불안을 증폭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우리 몸에는 면역시스템이 존재한다. 바이러스나 세균에 노출된다고 해서 모두 감염되는 것은 아니다. 겨울철에 감기에 더 잘 걸리는 이유도 없던 바이러스가 생겨서라기보다 춥고 건조한 환경이 점막의 방어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외출 후 손을 씻고 음식을 먹기 전 손을 씻는 기본적인 위생은 중요하지만 남이 만진 손잡이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절대적인 금기처럼 여길 필요는 없다. 감염병은 결국 확률의 문제다. 이 사실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공공장소의 문을 손으로 열고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작은 배려가 회복될 때 사회는 다시 사람답게 작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과학은 공포를 키우는 도구가 아니라 공포를 설명하고 줄이기 위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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