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은 서울의 중심이기 전에, 서울의 태도다. 누군가에게는 출근길의 배경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한국을 처음 마주하는 장면이다.
2024년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314만명까지 회복했고, 올해 1월에는 90만명으로 코로나 이전 같은 달 수준을 넘어섰다. 광화문은 이제 세계인이 서울의 품격을 가늠하는 첫 문장이 됐다.
사람이 몰리는 장소는 대개 두 방향으로 늙는다. 더 자극적으로 변하거나, 더 단정해지거나. 광화문 일대는 이미 강한 끌림을 증명했다. 지난겨울 광화문·청계천 일대 방문객은 539만명에 달한다. 이 숫자는 성공이지만, 동시에 질문이다. “이 많은 발걸음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게 할 것인가.” 즐길 거리가 넘칠수록, 오히려 도시의 상징은 ‘배경’으로 밀려나기 쉽다.
2024년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314만명까지 회복했고, 올해 1월에는 90만명으로 코로나 이전 같은 달 수준을 넘어섰다. 광화문은 이제 세계인이 서울의 품격을 가늠하는 첫 문장이 됐다.
이인화 도원건축사사무소 대표 |
‘감사의 정원(Garden of Gratitude)’이 설득력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정원은 화려한 조형을 하나 더 얹는 방식이 아니라, 도시의 그늘을 사람의 길로 되돌리는 방식으로 출발한다. 폐쇄된 지하 진입 경사로를, ‘기억의 통로’로 바꾼다. 도시가 성숙해지는 방식은 대개 이런 선택에서 드러난다. 불편한 흔적을 지우는 대신, 공공의 언어로 다시 쓰는 일. 그 길을 걸어 들어가는 순간 방문객은 더는 “보는 사람”이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이 된다.
이 정원이 말하는 ‘감사’는 추상적인 미사여구가 아니다. 한국전쟁에 유엔 참전·지원으로 함께했던 나라는 22개국이다. ‘22’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타국의 젊은이들이 낯선 땅에 와서 남긴 헌신의 좌표다. 감사의 정원은 이 좌표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공간으로 번역한다. 그 번역의 핵심 언어가 ‘받들어총(Present Arms)’이다.
받들어총은 군 의전에서 가장 단정하고 엄정한 경례다. 총을 쥔 손의 움직임이 아니라, 자세 전체로 예를 표하는 방식이다. 발끝부터 시선까지 하나의 선으로 모으고, 동작은 절제되며, 무엇보다 ‘동시에’ 움직인다. 동시성은 메시지를 만든다. “여기는 가벼운 곳이 아니다.” 받들어총은 국가와 깃발, 그리고 전우와 희생을 향해 더 자주 올려진다. 그 형상은 단지 군사적 상징이 아닌, 세계 어디서든 통하는 예우다. 사람은 ‘정돈된 경례’를 보면 본능적으로 고개를 낮춘다. 이게 받들어총이 가진 힘이다.
22개의 수직 요소가 도열해 받들어총의 리듬을 떠올리게 할 때, 공간은 자연스럽게 ‘의장대의 통로’가 된다. 방문객은 그 사이를 지나며 속도를 조절하고, 시선을 정돈하고, 말수를 줄인다. 더 아름다운 지점은 여기서부터다. 그 예절은 강요가 아니라 초대다. ‘당신도 함께 경의를 표해달라’는 초대. 동시에 ‘우리는 잊지 않는다’는 약속이다. 이 순간 광화문은 서울이 세계인과 맺는 관계의 방식, 공공외교의 태도로 바뀐다.
광화문광장이 모이는 힘의 공간이라면, 감사의 정원은 마음을 정돈하는 힘의 공간이다. 두 힘이 이웃할 때 광화문은 완성된다.
광화문의 첫 문장이 ‘환대’에 머물지 않고 ‘감사’까지 말한다면, 서울은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다. 어둠 속에 묻혔던 길을 사람의 길로 되돌리고, 그 길 위에 ‘받들어총’의 예우를 세우는 일, 그것은 광화문이 세계에 건네는 가장 단정한 인사다.
이인화 도원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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