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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놀이’ 폭로 이후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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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 르포작가·‘유령들: 어느 대학 청소노동자 이야기’ 저자



이른바 ‘계엄령 놀이’로 알려진 위계상 괴롭힘 사건의 피해자 중 한명이 지난 4일 문화방송(MBC)과 한 인터뷰를 보았다. 그는 이 사건의 가해자이자 쓰레기 수거 차량 운전자였던 7급 공무원과 한 조를 이뤄 쓰레기 수거 작업을 한 강원 양양군의 기간제 환경미화 노동자였다. 인터뷰의 주된 내용은 이 사건이 드러난 이후 피해자가 겪은 현실에 관한 것이었다. 6개월의 근로 계약은 인터뷰 다음날 만료된다고 했다.



한편으로 그는 이 사건의 실체를 언론사에 제보한 당사자이기도 했다. 그의 제보가 방송으로 처음 보도된 시점과 그가 계약 만료로 일터를 떠나야 하는 시점 사이에는 며칠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물론 계약상 흠잡을 데는 없다. 근로기간이 남아 있는 와중에 갑자기 해고나 계약 해지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정해져 있었던 계약이 종료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괴롭힘 피해를 언론사에 제보하지 않고 그냥 감내했다면 어떤 미래를 맞이했을까. 인터뷰 당시처럼 계약 만료로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과 마주했을까. 아니면 계약이 6개월 더 연장되거나 공무직(무기계약직)으로 ‘승진’됐을까. 내 머릿속을 맴도는 이 질문은 내가 그동안 봐 왔던 건물 청소노동자들의 현실에서 비롯된다.



근로 계약의 기간이 며칠 이상 돼야 한다는 취지의 법은 현재까지 없다. 극단적으로 계약 기간이 딱 하루여도 불법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3개월 이하의 근로 계약 기간이 선풍적으로 유행할 때가 있었다. 수습 기간 3개월까지는 최저임금 미만으로 급여를 지급해도 된다는 최저임금법의 예외조항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부 아르바이트 자리는 3개월마다 계약을 갱신하며 ‘수습생’이 돼야 하는 기행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런 식의 꼼수를 방지하기 위해 1년 미만 계약에선 예외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는 단서가 2012년에 새로 생기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3개월 단위 쪼개기식’ 계약은 유효를 다했을까. 건물 청소·경비업 같은 고령 노동자 위주의 일자리에서는 여전히 쓸모를 인정받고 있다. 오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복종’을 이끌어낼 수 있어서다. 기업이 원하는 목적에 맞게 말이다. 이를테면, 2016년에 한 대학병원의 청소 용역을 맡은 업체가 청소노동자 채용 시 첫 계약 기간을 3개월로 정한 이유는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신입을 막기 위함이었다. 신입들은 당연히 3개월만 일하려고 입사한 것이 아니었기에, 민주노총 가입을 피했다.



사실 고령 노동자들은 노동 환경이 아무리 열악해도 버티는 편을 택한다. 그들이 어느 세대보다 유달리 강한 인내력을 소유한 인재여서는 아니다. 밥벌이를 잃지 않으려면 버틸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퇴행성 관절염으로 무릎이 아픈데도 회사에 정말 아프다고 말하면 계약 만료로 잘릴까 봐 진통제와 파스로 고통을 숨기며 일했던 한 청소노동자에게 들었던 말이 이를 가장 잘 설명해줄 것 같다. “나이 든 사람 쓰려는 일자리가 얼마 없어요. 그래서 취직되면 회사에 진짜 감사한 마음으로 일해요. 그 감사함이 결국 갑질마저 이겨내게 만들어요. 갑질을 못 버티고 그만둬도, 어디서 또 뽑아준다는 보장이 없거든요. 갑질에 반항도 못 해요. 그랬다가는 3개월마다 쓰는 근로 계약서를 다시는 쓸 수 없게 될 테니까요.”



‘계엄령 놀이’가 고발된 이후에 그 가해자는 직위해제를 당했고, 구속까지 됐다. 그가 최종적으로 받을 죗값이 합당할지는 끝까지 지켜봐야겠지만, ‘정의는 결국 구현된다’는 서사의 흐름에는 큰 무리가 없는 과정 같다. 한겨레는 이를 전하는 기사에서 ‘그가 사회로부터 격리됐다’고 표현했다. 공교롭게도 그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된 날은 공익 제보자의 근로 계약 만료일이기도 했다. 정말 계약이 끝났다면 ‘제보자가 일터로부터 격리됐다’는 표현은 과한 것일까?



갑질과 괴롭힘을 폭로한 대가로 근로 계약이 갱신되지 않았다는 ‘찜찜함’은 사용자가 어떤 해명을 내놓아도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그가 환경미화원으로 계속 일할 수 있는 구제조치가 취해질 때만 사라진다.



그의 인터뷰 영상을 본 다른 기간제 노동자들은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아무리 심한 괴롭힘과 갑질 피해를 겪어도 최대한 견뎌보려 하지 않을까. 최소한 석연찮을 결과는 만들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쪼개기 계약을 강요받았던 건물 청소노동자들이 관리자의 부당한 지시를 따라야 했던 이유와 같다.



제보자의 꿈은 정년을 보장받는 환경미화원이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가해자 처벌만으로 정의는 구현되지 않는다. 부디 계약직 신분이었던 ‘계엄령 놀이’ 피해자들의 근로 계약이 이대로 끝났다는 결말은 틀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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