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과거의 감옥이 미래의 콘텐츠가 되다

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일본을 대표하는 호텔기업 호시노리조트가 내년 4월 국가중요문화재인 옛 나라교도소 건물군 일부를 박물관으로 우선 개관하고 연내엔 최고급 호텔 '호시노야나라교도소'를 공식 출범한다. 메이지 시대의 붉은 벽돌감옥을 숙박·전시 복합지로 재생하는 이 프로젝트는 일본 문화재 활용정책의 최신 방향을 보여준다. 단순 보존이나 복원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체류경험과 지역경제를 창출하는 플랫폼으로서 문화재의 기능을 재정의하는 것이다.

박물관의 콘셉트는 '아름다운 감옥에서 오는 질문들'이다. 규율과 통제의 상징이던 공간을 건축미와 정적 감성을 기반으로 자유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체험형 전시로 재구성했다. 정문 우측에 마련된 전시동은 교도소 건축의 역사, 수용생활의 변화, 감옥을 주제로 한 예술작품을 다루고 중앙 전망대 건물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보존구역'으로 운영한다. 감옥이라는 폐쇄적 구조가 오히려 현대인에게는 자유를 위한 공간으로 변모한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일본 특유의 '공간 재해석' 미학을 드러낸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방식의 재생이 일본 전역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시도된다는 점이다. 몇 해 전 도쿄 고탄다 지역엔 폐쇄된 도쿄구치소의 벽돌 외벽 일부를 보존한 복합상업시설이 등장해 화제가 됐다. 유럽식 감시탑과 적벽돌이 현대적 매장과 공존하는 이 시설은 도시가 과거의 흔적을 어떻게 일상의 소비와 연결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홋카이도에선 개척시대 건축물들을 통째로 이전해 마을단위로 재현한 '홋카이도 개척촌'이 문화유산형 관광의 대표 사례가 됐고 규슈 야마가타의 미이케 지역은 탄광도시의 흔적을 문화공연장과 박물관으로 재생해 젊은 방문객을 끌어들인다. 일본은 사라져가는 근대시설을 단순한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새로운 지역 정체성의 원천'으로 삼는데 능하다.

옛 나라교도소 프로젝트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 감옥건물의 방사형 배치와 독방구조는 원래의 폐쇄성을 유지한 채 호텔 객실로 재구성된다. 호시노리조트는 이를 '정적 럭셔리'라고 칭하며 고요함과 사유를 중시하는 새로운 숙박경험으로 제시한다. 전통적 온천·리조트 이미지에서 벗어나 역사 구조물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는 트렌드를 이끄는 셈이다.

또 다른 주목할 점은 같은 나라현 아스카 마을에서 추진 중인 '호시노야 아스카' 프로젝트다. 고대 아스카·후지와라 유적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이 지역은 오래전부터 체류형 관광이 과제로 남아 있었다. 호시노야는 5만㎡ 구릉지대에 저층 객실동과 계단식 정원을 조성하고 고분, 고대 궁성지와 연동한 체험형 프로그램을 구상한다. 이는 단순 호텔이 아니라 지역 전체를 하나의 '문화경관'으로 묶어내는 장기전략이다.

일본이 이런 재생프로젝트에 강한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문화재를 '부담'이 아닌 '자산'으로 보는 관점이다. 관람료, 숙박료, 민간투자를 결합해 유지비를 자체 충당하는 구조를 선호한다. 둘째, 과거의 기능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다. 감옥, 탄광, 공장 등 한국에서 다소 금기적일 수 있는 소재도 '사회적 학습의 장'으로 재해석한다. 셋째, 지역과 기업의 장기협약이다. 아스카 마을의 사례처럼 10년 이상 협의와 조정을 이어가는 방식은 단기성과를 달성하기 어려운 문화재 프로젝트의 안정성을 담보한다.

위 사례들은 문화재 보존이 특정 전문가집단의 의무가 아니라 지역경제를 살리는 산업전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감옥이 호텔로, 폐광이 공연장으로, 오래된 공장이 디자인센터로 재탄생하는 순간 과거는 더이상 '낡은 것'이 아니라 '경험의 자원'이 된다.

'아름다운 감옥'에서 던져지는 질문은 어쩌면 한국에도 유효할 것이다. 한국 역시 근대 시대의 건축물과 소중한 산업유산이 빠르게 사라지는 시기인데 근대를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현재의 가치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의 실험은 그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힌트를 제공한다.

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