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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10개 만들기' 하는 동안 뒤로 밀린 서울대 [한국의 창(窓)]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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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하버드보다 선호해도 떠나는 인재
‘천원의 아침 식사’ 등 함께하는 정책 필요
대학은 초격차를 선도하는 개척자의 산실

삼성가의 서울대 사랑은 4대로 이어진다. 이병철 회장은 허허벌판 관악캠퍼스에 호암교수회관을 세웠다. 이건희 회장은 서울대 사대부고 출신이고, 이재용 회장도 서울대 졸업생이다. 이부진 사장 아들의 서울대 합격이 장안의 화제다. 유명 인사 자녀 상당수가 미국 유학을 떠난다. 그래도 국민들은 가능하다면 하버드대보다는 서울대로 보내려 한다. 여전히 서울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징표다.

1970년대까지 필리핀은 한국보다 훨씬 부유했다. 그런데 서울대에 비견되는 마닐라의 필리핀대학은 이제 미국 유학 못 간 학생들의 피난처에 불과하다. 좌파 포퓰리즘이 횡행하는 중남미의 대학은 하향 평준화됐다. 콜롬비아는 전국 대학에 번호를 붙여 획일화했다. 프랑스 대학을 장악한 1968년 사태와 맥락이 같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파리 소르본 대학은 13개 대학으로 분할됐다. 그 결과 대학경쟁력은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프랑스에서도 경쟁력 제고를 위해 대학 간 합종연횡이 성행한다.

서울대는 한국 사회에서 칭송의 대상이자 동시에 질시의 대상이다. 노무현 정부는 서울대를 폐지하려다가 여론 역풍으로 포기했다. 이재명 정부의 화두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다. 지방 국립대가 서울대와 함께할 수 있으면 대환영이다. 서울대만 특권을 누려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실은 서울대조차도 녹록지 않다. 초빙된 해외 석학 중에서 정작 셋 중 하나는 서울대를 포기하고 미국에 남는다. 그런데 서울대가 신규 채용할 수 있는 정원은 1년에 10명도 채 안 된다. 이래서는 인공지능(AI) 시대에 능동적 대응을 할 수 없다. 최근 4년 서울대 교수 56명이 다른 나라로 떠났다. 더 이상 애국주의만으로 통하지 않는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위해 예산·인력을 지원하는 동안, 이미 그 서울대는 우리가 기대하는 서울대가 아니다. 냉철한 현실 분석에 기반한 이상만이 밝은 미래를 담보한다.

국민의 대학 서울대는 국립대뿐만 아니라 사립대와도 인적·물적 시설의 공유와 교수·학생의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관악 캠퍼스는 이미 포화상태지만, 시흥캠퍼스는 협력 체계 구축을 위한 거점으로 손색이 없다. 필자가 총장 재임 중 처음 실시한 ‘천원의 아침 식사’가 전국 대학으로 확산되듯이 모두가 함께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동반성장이 대학 정책에도 구현되어야 한다.

미국 대학의 경쟁력은 튼실한 재정에서 비롯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의 초중고 지원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대학 지원은 끄트머리다. AI시대에 컴퓨터도 제대로 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노벨상에 근접하는 연구는 불가능하다. 우수 인력이 정년의 틀에 묶여 중국 등으로 빠져나간다. 객관적으로 검증된 석좌교수, 교육·연구 우수교수의 선별적 정년연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경직되고 평준화된 사고로는 위기에 선 고등교육을 업그레이드할 수 없다. 지방대학과 전국에 산재한 과학기술대학을 특성화·전문화한다면 얼마든지 서울대를 능가할 수 있다. 포스텍 김성근 총장이 시도한 신입생 200분 면접도 신선한 충격이다.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이 맞닿은 현실에서 대학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통폐합의 아픔은 감내해야 한다. 고통 없는 발전은 없다. 대학은 추격자의 안식처가 아니라, 초격차를 선도하는 개척자의 산실이어야 한다.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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