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사위원장이 10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연합뉴스 |
재판소원(裁判訴願)은 한자(漢字)를 읽어도 뜻을 알기 어렵다. 정확한 법률 용어는 아니지만 언론이 사용하는 ‘4심제’라고 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현재는 대법원까지 3심제인데 헌법재판소에서 네 번째 재판을 받도록 제도를 바꾼다는 뜻이다. 재판을 해달라는 ‘소원(appeal)’이라는 말이 어려워서 그렇다. 그런데 왜 법률가와 변호사 정치인들은 재판소원, 헌법소원 같은 난해한 말을 고집할까. 전문가 집단 내부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를 영어로 ‘jargon’이라고 한다. 아직도 법원과 병원에서는 민원인들이나 환자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용어가 난무한다. 전문 분야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이를 쉽게 풀어 쓸 경우 진입 장벽이 낮아져 밥그릇 지키기가 어려워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처럼 언어라는 진입 장벽을 세워 약자들을 배제하는 과정을 통해 권력이 생성된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모든 갈등의 중심에 법이 있다. 이처럼 법 좋아하는 정부를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법치주의 이런 것도 아니다. 검찰청 해체와 중수청, 기소청 신설, 내란재판부와 재판소원, 판사와 검사 처벌을 위한 ‘법 왜곡죄’, 법원행정처 폐지. 이 모든 건 선거법, 대장동, 대북 송금 같은 대통령 관련 사건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 변수가 아니더라도 일관된 하나의 흐름이 있다. 돈을 받고 법률 서비스를 판매하는 변호사들의 밥그릇 확장이다. 정쟁이 아닌 ‘변호사 돈벌이’ 관점으로 이 사안을 봐야 하는 이유다.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가면 보통 변호사비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 깨진다. 3심에서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4심을 원할 것이고, 변호사 비용이 늘어난다. 헌법재판은 일반 재판과 다르다며 더 많은 착수금과 성공 보수를 요구할 것이다. 판사나 검사가 법을 왜곡했다며 처벌을 요구하고 싶다면 또 변호사를 구해야 한다. 신설되는 제도 곳곳이 돈이고 변호사다.
검찰청이 폐지되면 변호사 선임의 첫 관문은 검찰이나 법원에서 경찰로 내려오게 된다. 경찰 단계부터 좋은 변호사를 사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내야 하고, 경찰 출신 전관 변호사라면 웃돈도 줘야 한다. 변호사 시장이 검찰, 법원에 이어 경찰로까지 확장되는 말 그대로 ‘변호사 천국’이 된다. 전관예우는 검찰, 법원으로 모자라 경찰로 확대된다. 경찰, 중수청, 기소청으로 수사 단계가 복잡해질수록 법률 비용은 늘어만 간다. 물론 사법제도가 아무리 복잡해져도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상관없다. 오히려 재판을 4번 받을 수 있고, 수사나 판결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판검사 처벌까지 요구할 수 있다. 문제는 돈과 시간의 여유가 없는 보통 사람들이다. 사법 개혁이라는 가면을 들추면 ‘변호사 천국, 서민 지옥’이 보인다.
요즘 제일 재미있는 국회 상임위는 법사위다. ‘서팔계’ ‘꽥꽥이’ 같은 듣도 보도 못한 별명이 오간다. 그러나 여기에 포진한 변호사들은 싸움 와중에도 밥그릇 키우기에 여념이 없다. 검찰 폐지, 재판소원, 내란재판부를 다루는 곳이 법사위다. 민주당의 판검사 출신 법사위원들은 얼마 전 김어준 유튜브에 나와 재판소원에 대해 “K컬처처럼 K법률 강국이 되는 것” “4심제가 아니라 새로운 1심”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 강국 만들라 했더니 ‘K법률 강국’이라는 엉뚱한 약을 팔고 있다.
중국의 기술 굴기로 우리 밥그릇이었던 석유화학과 철강이 존폐 위기에 섰다. 이대로 가면 반도체와 AI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인재들이 의대가 아닌 공대로 가야 하고, 이를 위해선 이공계 출신들을 파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도 이를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회는 과학기술 문제는 뒤로 한 채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와 상관도 없는 검찰, 특검, 법원 문제로 밤을 새우고 있다.
검찰총장 대통령에 이어 등장한 변호사 대통령의 정부는 이공계 대우와 나라 밥그릇 키우기는 뒷전이고 변호사 밥그릇 확장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지금도 인문계 졸업생들은 전공에 상관없이 희망 1순위가 로스쿨이다. 그나마 문과 출신이 자격증으로 안정적 생활이 가능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같은 변호사 밥그릇 키우기가 계속된다면 이과는 의대로, 문과는 로스쿨로 쏠리는 퇴행적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다. 중국 수재들이 공대 가서 인공지능을 연구할 때 한국 수재들은 의대 가서 인공 가슴을 만들고, 인도 천재들이 실리콘밸리로 달려갈 때 한국 천재들은 실리콘 코를 만든다는 말이 그냥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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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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