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뉴스1 |
경찰은 이제껏 정권 비리를 수사한 적이 거의 없다. 수사 능력을 떠나 늘 정권 눈치만 본다는 의심만 샀다.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7년 전에 있었다. 이른바 ‘드루킹 사건’이다. 평창올림픽 당시 남북 단일팀 추진을 비판하는 댓글이 많이 달리자 민주당이 여론 조작 의혹이 있다며 경찰에 고발하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서울경찰청은 용의자로 드루킹 일당을 체포했다. 그런데 이들이 민주당 권리당원이었다. 급기야 이들이 2017년 대선 전후 댓글 조작을 벌였고, 당시 정권 실세이던 김경수 경남지사가 연루됐다는 자료와 진술까지 나왔다. 충격적인 급반전이었지만 경찰로선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큰 기회였다. 하지만 경찰은 ‘김경수’ 이름 앞에서 주눅 들어 그 기회를 날려 버렸다.
드루킹 일당이 체포된 지 44일 만에 김 지사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고는 “관련 없다”는 그의 진술을 중계방송하듯 공개했다. 김 지사의 휴대전화도 압수하지 못했다. 서울경찰청장은 김 지사가 댓글 공작과 별 관계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수사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 부실 수사를 허익범 특검이 뒤집었고, 김 지사는 징역 2년형이 확정됐다.
드루킹 사건은 경찰에 뼈아픈 것이었다. 중립적인 수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줬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권은 검찰 힘을 뺀다는 명분으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줬다. 그 결과가 지금의 수사 역량 약화와 수사 지연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경찰이 최근 다시 한번 기회를 얻었다. 시민단체가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사태와 관련해 정성호 법무장관 등을 서울경찰청에 고발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검찰이 항소를 결정했다가 뒤집는 과정에 정 장관과 대통령실 등 윗선의 ‘부당한 외압’이 있었는지를 밝혀야 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 기회마저 날려 버리고 있다.
사건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로 넘겨도 모자랄 판인데 수사 역량이 부족한 서울 서초경찰서로 넘겼다. 수사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고는 비판이 일자 슬그머니 사건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으로 다시 옮겼다. 코미디 같은 일이다. 이제껏 고발인 조사만 했을 뿐 무슨 수사를 한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비슷한 고발 건을 접수한 공수처가 사건 이첩을 요청하면 아마 그 즉시 보낼 것이다. 수사기관이라 할 수도 없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비밀 회동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수사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서영교·부승찬 의원 등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조 대법원장이 한 전 총리 등을 만나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사건을 대법원에서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말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발된 사건이다. 사실이 아니면 가짜 뉴스로 대법원장을 인격 살인한 중대 사안이다.
회동 의혹 당사자들은 만남을 부인하고 있고, 민주당은 아무 근거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실제 회동이 있었는지는 당사자들 동선만 확인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발된 지 석 달이 지났지만 사건을 맡은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의 수사는 감감무소식이다. 정권 눈치 보느라 수사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반면 통일교의 정치권 로비 의혹에 대해선 대통령이 밝히라고 하자 허겁지겁 달려들고 있다.
지금 경찰은 7년 전 드루킹 사건을 수사할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검찰을 정권의 시녀라고 했지만 경찰은 정권과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다. 내년에 검찰청이 폐지되면 경찰은 수사권을 거의 독점하게 된다. 그런 경찰이 어떤 일을 벌일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5분 칼럼' 더보기
[최원규 논설위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