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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의 한반도 워치] 대통령이 꺼낸 “한미 연합훈련 중단”, 안보 희생해 뭘 얻으려 하나

조선일보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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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4월 트럼프의 베이징 방문 때 미·북 정상회담 성사하려는 의도
미군 견제 사라지면 중·러가 한반도 개입할 것… ‘안보 자해’ 두렵다
풍전등화다. 내년도 한미 연합훈련은 폭풍우에 흔들리는 호롱불 신세다. 내년뿐만 아니라 이재명 정부 내내 계속 훈련이 중단될 것 같다.

이 대통령은 남아공 G20 정상회의 귀국 기내 기자간담회에서 특별한 뉴스거리가 없었는지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라는 묵직한 카드를 흔들었다. “북한이 가장 예민해하는 것이 한미 연합군사훈련이다. 남북 간의 평화 체제가 확고하게 구축되면 아예 안 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며 “상황에 따라서 이게 지렛대가 될 수도 있고 결과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트럼프 미 대통령을 끌어들였다. 돈이 들어 훈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주파 통일부 장관이 선제적인 연합훈련 중단을 제기했으니 새삼스러운 주장은 아니나 대통령이 공론화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간 보기 발언 이후 동맹파 안보실장이 슬그머니 발을 뺐지만 임박했다는 신호다.

그래픽=이철원

그래픽=이철원


대통령의 한미 연합훈련 중단 의도는 세 가지다. 우선 그 카드로 북한을 남북 대화에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대북 방송 중단과 비전향 장기수 송환 제의에도 평양 반응이 없자 훈련 중단을 비장의 마중물로 제시했다.

다음은 미북 정상회담으로 가는 유인책이다.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론’으로 남북 대화를 거부하고 미북 대화에 주력한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이다. 트럼프에게 김정은을 만나는 카드로 훈련 중단만 한 것이 없다고 설득한다.

마지막으로 한미 간 전시작전권 환수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다. 경주 한미정상회담 팩트 시트에는 250억달러의 미국 무기 구매와 330억달러의 주한 미군 지원 등이 있다. 동시에 전작권 환수를 추진한다는 합의도 있다. 전작권이 이양되면 연합훈련의 필요성은 더 약화된다.


전작권이 환수되면 주한미군사령관의 계급은 격하될 수 있으며 반대로 주일미군사령관의 계급은 올라간다. 미군이 타국 지휘관의 명령을 받으며 연합훈련을 하는 것은 미군 교범에 없다.

이 대통령은 내년 초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과 회담을 준비한다. 시 주석이 김정은을 설득하여 미북 대화에 나오도록 당구의 쓰리쿠션을 구사한다. 서울·평양 간 대화가 안 되니 서울~베이징~평양 라인을 통해 평양·워싱턴 회담을 조기에 성사시키겠다는 복안이다.

최근 케빈 김 주한 미국 대사 대리는 “북한과 모든 옵션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선택지도 예외로 둬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8~2019년 스티브 비건 당시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보좌관을 지내며 미북 협상에 깊이 관여했다.


트럼프는 내년에 노벨평화상을 받기를 희망한다. 가을 중간선거에서 패배하면 분위기는 어두워진다. 노벨상의 업적 평가는 상반기에 마무리되는 만큼 7월 전에 김정은과 정상회담 이벤트를 하려고 한다. 내년 4월 미중 정상회담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하는 전후에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고자 물밑에서 움직인다.

5월 진행된 한미연합사 연합·합동 의무지원훈련. /연합뉴스

5월 진행된 한미연합사 연합·합동 의무지원훈련. /연합뉴스


여기까지는 내년 상반기까지 동북아 국제정치 예고편이다. 문제는 우리 안보의 보루인 한미 연합훈련이 중단되는 시나리오다.

한미 연합훈련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출발점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10월 워싱턴에서 방위조약 체결 직후 후손들이 안전하게 살게 되었다며 조약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양국은 한미안보협의회(SCM)와 한미군사위원회(MCM)를 설치해 실질적인 안보협력 관계를 형성했다.


미국은 유사시 미 해군, 공군 및 해병대 병력 중 30% 이상의 대규모 증원 전력을 전개하도록 훈련함으로써 대북 억지력을 행사했다. 6·25 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미 연합훈련은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키리졸브, 독수리연습 등 세 가지로 시행됐다. 문재인 정부는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 합의를 통해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추진했다. 한반도 우발 상황을 가정한 한미 연합훈련인 UFG 연습이 43년 만인 2019년 폐지됐다가 2022년 을지프리덤실드(UFS) 연습으로 겨우 부활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당부는 흔들리고 있다. 자주국방과 민족공조라는 감성적 단어로 실질적인 한미 연합훈련은 점차 전설이 되고 있다. 재래식 무기 국가인 한국이 핵무장 국가인 북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안보의 근간을 허물고 있다.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미명하에 안보 자해 수준이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안부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안부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군에게 한미 연합훈련은 핵심적인 대북 억지력이다. 북한이 훈련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이유다.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파병에서 봤듯이 한반도 북쪽에는 북한군만 있는 게 아니다. 중국은 두만강과 압록강 근처에만 2만여 명의 병력을 주둔시킨다. 평양의 급변사태 발생 시 한 시간 내 진입이 가능하다. 러시아 극동함대는 순식간에 청진항에 입항한다. 중·러의 폭격기가 도쿄를 폭격할 수 있는 위협 비행이 동북아 안보의 현실이다. 주한미군의 견제 역할이 없다면 중·러의 한반도 진입은 명약관화하다.

외교가 안보 위에 있지 않다. 외교도 안보를 위한 것이다. 정상적인 주고받기에 기반해야 한다. 미군조차 우려하는 군사력 와해 카드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좌(左) 중국, 우(右) 러시아를 등에 업고 서울을 200여기의 핵무기로 위협하는 평양이다.

남북 대화 만능주의 명분하에 온갖 제안이 난무한다. 어떤 자주파 원로는 헌법의 영토 조항인 제3조를 개정하면 북이 대화에 나올 것이라는 기상천외한 제안을 한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국가안보실을 배제하고 통일부가 대미·대북 협상을 주도하라고 한다.

2002년 북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일본의 다나카 히토시 전 외무성 국장은 최근 ‘비밀 교섭’이 담긴 신간에서 “북(北)과 상식 벗어난 협상은 절대 안 해, 그게 안 되면 중단한다는 원칙이 있었다”고 했다. 북한이 요구한 ‘현금’을 주지 않으며 ‘안보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일본의 북일 협상 상식을 이재명 정부 자주파들이 지킬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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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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