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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말라가는 중동, 기후난민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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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전기, 생명-우리의 기본 권리!” 올해 5월부터 이란 곳곳에서 터져 나온 절규다.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사흘째 물이 끊긴 채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외침이었다. 테헤란의 라트얀 댐은 9%의 물만 남았고, 마슈하드의 아르다크 댐은 3%에 불과했다. 이란 전역 19개 댐이 사실상 바닥을 드러냈다. 지난 11월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비가 오지 않으면 테헤란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가 사원에서 열리기도 했다. 또한 이란 전역에서 이 기후위기에 맞선 시위들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국가의 대통령이 1500만명이 사는 수도의 이전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위기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이란은 60년 만에 최악의 가뭄에 직면해 있다. 올해 11월까지 강수량은 평년 대비 81%나 감소했으며, 테헤란에 물을 공급하는 5개 주요 댐의 평균 저수량은 10%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심각한 가뭄의 배경에는 최근의 기후위기를 넘어 깊은 뿌리가 있다.

1979년 혁명 이후 서구의 제재에 대응해 이란 정부는 식량 자급을 국가 목표로 삼았다. 관개 농지는 두 배로 늘었고, 물 소비량의 90%가 농업에 쓰인다. 무분별한 댐과 우물 건설은 우르미에 호수 같은 생태계를 파괴했고, 지하수 채취는 지반 침하를 야기했다. 노후 인프라로 정수된 식수의 30%가 누수로 사라졌고, 그 위에 기후변화가 기름을 부었다.

심각한 기후위기는 중동 전역의 복합위기를 가져왔다.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의 이라크와 시리아 역시 극심한 가뭄에 시달린다. 세계기상기구 연구에 따르면 지구온난화 이전 250년에 한 번 발생하던 극한 가뭄이 이제는 10년마다 발생한다. 시리아에서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기록적 가뭄으로 150만 농민이 도시로 밀려들었고, 이것이 2011년 내전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예멘은 10년 넘은 내전에 사막화와 가뭄이 겹치면서 1700만명이 식량 원조를 필요로 한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 인구의 83%가 극심한 물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보고된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환경 재앙이 아니라 정치 불안의 기폭제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물 부족은 식량 위기로 이어지고, 식량 위기는 사회 갈등과 기후난민 문제를 촉발한다. 가뭄으로 생계를 잃은 농민들이 무장단체에 합류하거나 난민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해법은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다. 경제 다각화, 노후 인프라 교체, 해수 담수화와 지하수 재충전 같은 복원 중심 관리가 필요하지만, 중동 곳곳의 안보 위기는 기후의 위협에 바로 대응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중동의 가뭄을 포함한 환경 위기는 기후변화 시대 미래를 보여준다. 수십년간의 잘못된 정책과 기후변화가 만난 지점에서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가 된다. 고갈된 대수층은 쉽게 회복되지 않고 무너진 생태계는 빠르게 복원되지 않는다. 중동 각 지역 정부가 장기적 안목을 가진 의미 있는 개혁을 미룰수록 선택지는 줄어든다. 물 위기는 단순히 환경 문제가 아니라 중동의 사회적·정치적 미래와 얽혀 있다. 테헤란 거리의 구호는 단지 물과 전기만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기후변화 시대 살아남을 권리, 미래를 요구하는 외침이다. 그 외침은 지금 중동 전역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교수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교수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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