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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석 |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한국인구학회장
날이 금세 어두워지고, 찬 바람이 집 안 구석을 파고든다. 낡은 텔레비전에서는 노래와 웃음소리가 밝고 따뜻하다. 미지근한 전기장판에 앉아 방송을 보는 이들에게 다시 찾아온 겨울은 여전히 길고 무겁다. 혼자 살 만한 형편이라면야 추위가 두렵지 않을 것이다. 세 집 중 한 집이 1인 가구이고, 그중 상당수는 궁핍과 고립 속에 놓여 있다. 그 모습은 홀로 사는 이의 연령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모가 마련해준 집에서 혼자 사는 청년들도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청년은 고시촌이나 반지하, 오래된 원룸에서 월세를 감당하며 살아간다. 이들의 혼자 살기는 생활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깝다. 소득에 비해 턱없이 높은 집값은 주거 선택지를 좁힌다. 취업난과 불안정한 일자리, 낮은 임금은 압박을 더한다. 경제적 부담이 커질수록 친구나 동료와의 관계는 약해지고, 청년들은 도움을 청하기보다 혼자 견디는 방식을 익힌다. 이렇게 ‘잠시’ 시작한 혼자 살기는 어느새 ‘계속’이 되고, 장기간의 버티기로 굳어진다. 청년의 혼자 살기가 자립으로 이어지려면 주거와 일자리, 그리고 사회적 연결망의 기반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중년의 혼자 살기는 청년기 혼자 살기의 연장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중년기 가족관계의 해체에서 비롯된다. 생계와 돌봄 부담이 누적되고 오래된 갈등이 깊어지면 이혼이나 별거가 현실이 된다. 여기에 실직·조기퇴직이 겹치면 관계는 더 약해지고 생활의 틀도 흔들린다. 이렇게 시작된 중년의 혼자 살기는 남녀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족을 떠나, 혹은 가족이 떠나 홀로 사는 중년 남성은 일터에서 맺어온 관계망이 무너지는 순간 단절의 위험에 직면한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 고립이 빠르게 진행된다. 중년 여성은 오랜 돌봄과 가사노동으로 인한 경력 단절, 현재의 저임금 구조 속에서 빈곤의 위험이 더 크다. 결국 중년의 혼자 살기는 남성에게는 고립, 여성에게는 경제적 취약성이 두드러진다. 이 시기에 관계를 회복하고 사회 참여의 통로를 넓히며, 생활을 지탱할 소득과 일자리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
노년의 혼자 살기는 대체로 시간이 쌓인 끝에 도달하는 삶의 한 모습이다. 배우자와의 사별과 자녀의 분가로 홀로 남게 되고, 중년기에 드러났던 단절과 빈곤은 노년에 이르러 더욱 짙어진다. 몸은 쇠약해지고, 앓는 질환도 많아지며, 사회적 접촉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하루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게 되면서, 집은 쉬는 공간이라기보다 세상과 떨어져 지내는 곳이 된다. 남성 노인에게는 직장 중심의 관계망이 없어진 지 이미 오래고, 연락을 나눌 친구도 점차 줄어든다.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데 서툴러 고립 위험이 크다. 여성 노인은 배우자 사별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정서적 고독이 두드러진다. 생애 전반의 경력 단절과 낮은 임금 구조는 노년 여성의 빈곤 위험을 더욱 높인다. 노년의 혼자 살기가 고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의료·돌봄 서비스에 쉽게 닿을 수 있어야 하고, 지역사회에서 사람들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통로를 넓혀야 한다.
혼자 사는 삶이 겪는 고립의 끝은 고독사다. 고독사는 단순히 ‘혼자 죽는 일’이 아니라, 관계망이 끊기고 돌봄이 닿지 않은 채 죽음 이후에도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2023년 기준 고독사한 사람의 절반 이상이 50~60대이고, 그중 80% 이상이 남성이다. 이는 사회적 연결과 생활 기반을 잃고 홀로 살아가는 중·노년 남성들이 경제적 압박과 건강 악화까지 겹친 상황에서, 작은 사고나 질병에도 제때 대응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결국 고독사는 우리 사회가 취약한 한 개인을 홀로 남겨둔 채 방치해왔음을 알리는 사회적 경고다.
세대마다 처지는 달라도 고립이 생기는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청년의 불안정이 중년의 단절로, 중년의 단절이 다시 노년의 고립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혼자 남겨지는 삶이 아니라 혼자 살 수 있는 삶이 되게 하려면, 주거 안정과 일자리, 관계망과 돌봄망을 세대별로 촘촘히 마련해 이 고립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 겨울바람은 혼자 사는 이들에게 더 매섭다. 혼자 사는 낯익은 이웃이 있다면 눈인사라도 나누어보면 어떨까. 그 짧은 인사가 이 세상이 아직 따뜻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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