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했다. 경제안보의 시대인 만큼 안보뿐 아니라 경제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미국의 대외전략이다. 그동안 많은 혼란과 당황을 낳았던 트럼프 2기 대외정책을 공식적으로 설명하는 문서인 만큼 관심과 파장도 컸다.
이 문서를 가장 열심히 읽으며 분석할 나라 중의 하나는 중국이다. 중국은 트럼프 1기 이후 본격화된 미·중 갈등의 당사자이자 트럼프 2기에 극단으로 치달았던 관세전쟁의 당사자였다. 내년 4월에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도 예정돼 있다. 미국의 속내를 읽고 대미전략을 가다듬어야 하는 나라다.
그런데 이번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는 중국에 대한 적대적 메시지보다, 동맹국의 부담 공유같이 유럽이나 아시아의 동맹국들을 긴장시키는 메시지가 더 많이 담겼다는 평가가 많다. 중국과는 "상호 이익이 되는 경제관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절도 발견된다. 타국의 민주주의나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각국이 통과해온 역사와 전통을 인정하겠다는 선언도 담겨 있다. 마치 중국에 싸움을 멈추고 강대국 사이의 협력과 담합을 논의하자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더 자세히 뜯어보면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적대적인 인식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가령 미국은 핵심적인 인프라와 경제에 대한 '외국의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 미국은 더 이상 공급망과 에너지를 '적국'에 의존해선 안 된다. 미국의 안마당인 서반구에서 인프라와 전략자산을 '비서반구의 경쟁자' 혹은 '적대적인 외부적 영향'의 통제에 빠지게 하거나 각국이 그들과 협력하는 것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미국과 동맹국을 위협하는 '위협적인 야망'이나 '약탈적 경제적 행동'에도 공동 대응해야 한다.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를 '잠재적인 적대 세력'이 통제하도록 놔둬선 안 된다는 구절도 있다. 중국의 국가주도적 체제의 지원을 받는 기업이 글로벌사우스에서 영향을 확대하고 있다고도 우려한다. 심지어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이념이 미국을 해치고 적국을 돕고 있다는 표현도 등장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외국, 적국, 경쟁자, 야망, 약탈적 행동, 적대적 영향, 잠재적 적대 세력, 이 모든 표현이 가리키는 곳은 중국이다.
즉 중국에 대한 미국의 시각은 변한 것이 없다. 다만 그 접근 방식은 분명히 변화하고 있다. 이제 요란한 중국 때리기는 덜 등장한다. 사실 관세 부과와 경제 제재 등을 통해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던 미국의 시도는 별로 성공적이지 않았다. 그 대신 미국은 부상하는 중국을 상수로 놓고, 장기적으로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고, 핵심적 공급망과 광물에 대한 접근을 확보하고, 미국의 산업을 부흥시키고, 방위산업 역량을 재건하고, 에너지 주도권을 강화하고, 금융과 통화의 지배력을 유지하자는 국내적인 경제안보 목표는 결국 부상하는 중국에 맞서 미국이 압도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을 스스로 구축하자는 얘기다. 심지어는 2030년대까지 국내총생산(GDP) 40조달러에 도달해 세계 1위의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성장목표까지 등장한다.
이제 미·중은 포격전을 멈추고 장기전에 대비해 진지를 강화하는 국면이다. 그것이 세계 경제에 주는 의미를 평가해 보아야 한다. 포격전이 한창일 때는 혹시라도 중간에서 그 유탄에 맞을까봐 모두가 전전긍긍했다. 이제는 미국이 진지전을 위한 거대한 보루를 쌓고 있다. 그 보루의 한 축이 이른바 미국 제조업의 부흥과 미국 인프라의 현대화다. 그리고 거기에 들어갈 수천억 달러의 자금을 내라는 게 한국, 일본, EU 같은 동맹국들이 받아 들고 있는 청구서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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