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상태가 이상해요.”
지난 4월15일 오전 “가족을 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내용의 이상한 문자를 받았다며 한 여성이 다급하게 119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과 경찰은 오전 9시55분쯤 50대 남성 A씨의 주거지인 경기 용인시 수지구의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으로 추정되는 5명의 시신을 발견했다. A씨의 80대 부모와 50대 아내, 10·20대 두 딸로, 총 4개의 방에서 각각 쓰러져 있었다. 모두 타살 흔적이 남은 채였다. 곧장 A씨를 용의자로 특정한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10분쯤 광주광역시의 빌라에 머무르던 A씨를 찾아내 긴급 체포했다. A씨는 발견 당시 수면제를 다량 복용한 상태였으나 이내 의식을 회복했다. 이 아파트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범행 발단은 지난 3월 시작됐다. 주택건설업체 대표이사로 있었던 A씨는 광주시 일대 민간임대아파트 신축 및 분양 사업을 진행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런데 관할 구청에 신고하지 않고 사전 입주자를 모집하는 등 무리한 사업 진행으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지난 3월24일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A씨가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계약자들이 인지했고 이때부터 A씨에 대한 민사소송과 형사고소 사건이 잇따라 접수됐다. 60여명 이상이 고소하자 A씨 측은 “경찰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계약자 신상정보를 이용해 계약자들에게 마치 이미 죄가 확정된 것처럼 확대 수사를 벌였다”며 업무 방해와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광주 동부경찰서 소속 경찰을 수사해달라는 취지의 고소장을 내기도 했다. 수십억원 상당의 채무를 부담하게 된 그는 자신으로 인해 가족이 힘들게 살 것이라는 생각에 범행을 계획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4월15일 오전 “가족을 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내용의 이상한 문자를 받았다며 한 여성이 다급하게 119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과 경찰은 오전 9시55분쯤 50대 남성 A씨의 주거지인 경기 용인시 수지구의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으로 추정되는 5명의 시신을 발견했다. A씨의 80대 부모와 50대 아내, 10·20대 두 딸로, 총 4개의 방에서 각각 쓰러져 있었다. 모두 타살 흔적이 남은 채였다. 곧장 A씨를 용의자로 특정한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10분쯤 광주광역시의 빌라에 머무르던 A씨를 찾아내 긴급 체포했다. A씨는 발견 당시 수면제를 다량 복용한 상태였으나 이내 의식을 회복했다. 이 아파트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경기 용인시 한 아파트(오른쪽)에서 일가족 5명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50대 남성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지난 4월17일 용인동부경찰서 유치장을 나오고 있다. 용인=연합뉴스·뉴스1 |
범행 발단은 지난 3월 시작됐다. 주택건설업체 대표이사로 있었던 A씨는 광주시 일대 민간임대아파트 신축 및 분양 사업을 진행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런데 관할 구청에 신고하지 않고 사전 입주자를 모집하는 등 무리한 사업 진행으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지난 3월24일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A씨가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계약자들이 인지했고 이때부터 A씨에 대한 민사소송과 형사고소 사건이 잇따라 접수됐다. 60여명 이상이 고소하자 A씨 측은 “경찰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계약자 신상정보를 이용해 계약자들에게 마치 이미 죄가 확정된 것처럼 확대 수사를 벌였다”며 업무 방해와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광주 동부경찰서 소속 경찰을 수사해달라는 취지의 고소장을 내기도 했다. 수십억원 상당의 채무를 부담하게 된 그는 자신으로 인해 가족이 힘들게 살 것이라는 생각에 범행을 계획하기에 이르렀다.
검찰 수사 결과 A씨가 사전에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한 정황이 드러났다. 그는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수면제를 처방받아 모아왔다. 앞서 불면증 진단을 받은 A씨는 향정신성의약품을 구입하기 위해 지난 1월23일 광주의 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졸피뎀 성분 약 10정과 로라제팜 성분 약 10정을 처방을 받았다. 또 졸피뎀, 로라제팜 성분의 약을 2월4일에 각 14정(총 28정), 3월27일에 각 15정(총 30정)을 처방받아 보관했다. A씨는 처방받은 약을 가루로 만들기 위해 3월31일 분쇄기를 구입하고, 4월9일 보관했던 약 25정을 섞어 가루로 만들어 약봉지에 담아뒀다. 이후 4월13~14일 가루를 넣을 요구르트와 요플레를 다수 구입했다.
일가족 5명을 살해한 50대 남성이 지난 4월15일 경기도 용인서부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용인=연합뉴스 |
범행은 4월14일 오후 8시부터 이튿날 자정 사이 이뤄졌다. 당시 사업차 광주에 머물면서 아내와 주말부부로 지내던 A씨는 용인 소재 본가에서 약이 섞인 요구르트와 요플레를 일가족 5명에게 차례대로 먹인 후 잠들게 했다. 큰딸은 유학 중 잠시 한국에 귀국한 상태였고, 작은딸은 대학 신입생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약에 취해 잠든 부모와 아내, 두 딸의 방에 들어가 목을 양손으로 졸라 살해했다. A씨는 광주시에 위치한 자신의 빌라로 승용차를 이용해 도주하면서 자신의 누나에게 신변을 비관하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도주 중 약물을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범행 사실을 모두 자백했다.
존속살해 및 살인,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구속기소 된 A씨는 지난 8월28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제13형사부(부장판사 장석준)는 “영구히 사회에서 격리하고 자유를 박탈해 여생을 평생 참회하면서 사는 게 마땅하다”고 판시했다. 1심에서도 사형을 구형한 검찰은 항소심에서도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달 19일 수원고법 형사2-1부(김민기 김종우 박광서 고법판사) 심리로 진행된 항소심 결심에서 검찰은 “사업 실패로 경제 부담을 안겨주기 싫다는 이유로 가족들을 계획적으로 살해한 점이 매우 중하고 죄질 불량하다”며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 판결은 국민 법 감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지난 4월15일 일가족이 숨진 채 발견된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의 모습. 용인=뉴스1 |
검사의 구형 후 재판장은 재판 내내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A씨에게 “그냥 고개만 숙이고 재판을 간단히 받아서는 안 되는 사건”이라며 선고 전까지 솔직한 심정을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재판장은 “이번 사건은 유례없는 비통한 사건”이라며 “피고인이 자기 잘못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있어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반성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어 “20대인 다 큰 성인 자녀를 포함해 피고인을 낳아주고 평생을 기른 부모와 배우자를 살해한 것이 ‘너무나 비극적’이라는 이유로 (피고인을) 동정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실상 우리나라가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되고 있지만 법관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민된다. (피고인이) 나도 자살하려고 했으니 검사의 구형처럼 선고해달라고 하기에는 이 사건을 바라보는 법관과 일반 국민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법관도 “피고인이 잘못했다고 하지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지 의문”이라며 “과거로 돌아가면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인지 얘기할 수 있느냐”고 A씨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A씨는 한숨을 내뱉으며 일어나 “어떠한 말씀을 드려도 제 마음을 전해드릴 수는 없을 것 같다”며 “한마디만 한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매일 그런 생각을 한다”고 답했다.
일가족 5명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50대 남성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지난 4월17일 경기도 용인동부경찰서 유치장을 나오고 있다. 용인=뉴시스 |
그는 1심 결심 공판에선 “사형 같은 법정 최고형으로 엄벌을 내려 달라.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다. 평생 뉘우치고 회개하며 살겠다”고 최후 진술한 바 있다. A씨는 범행을 모두 인정하며 1심 재판에서도 최후진술 이외에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았다. 1심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하지 않았다. 항소심은 검찰이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하면서 진행됐다. 항소심 선고는 오는 24일 열릴 예정이다.
한편 부모나 조부모가 자녀나 손자녀를 살해하는 ‘비속살해’가 매해 반복되며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8월 인천의 한 아파트에선 60대 남성이 사제총기로 아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지난 9월엔 대구에서 30대 남성이 자지 않고 보챈다는 이유로 생후 35일 된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다.
지난 7월20일 오후 4시쯤 사제총기 비속살인범인 60대 남성이 인천 송도의 아들 집으로 향하기 전 서울 도봉구 거주지 엘리베이터에서 큰 가방을 옮기는 모습. YTN 보도화면 캡처 |
조국혁신당 정춘생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자녀 및 손자녀를 살해하거나 살해 시도가 미수에 그쳐 검거된 인원은 총 62명으로 나타났다. 62명 중 살해는 39명, 미수는 23명이었고 손자녀를 대상으로 한 범행은 2건, 나머지 60건은 자녀가 대상이었다. 시도별로는 경기도가 11명으로 가장 많았다. 가족을 살해한 뒤 피의자가 자살하는 사례는 총 30건이었으며, 이 중 피해자가 18세 미만 아동인 경우는 14건이었다.
현행법상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존속살해’는 가중처벌 대상이지만 비속살해를 다루는 규정은 없다. 존속살해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으로 일반 살인죄(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보다 가중 처벌된다. 하지만 비속살해는 별도의 가중처벌 조항 없이 일반 살인죄와 동일하게 처벌된다.
정 의원은 “최근 가족 간 살인, 특히 자기방어 능력이 부족한 미성년 자녀를 대상으로 한 끔찍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동반자살’이라는 잘못된 용어처럼 자녀의 생명을 부모의 것인 양 좌지우지하는 일이 없도록 사회적 인식 변화와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며 “현행 형법에서 살인죄보다 가중처벌하는 존속살해죄 규정이 있는 것처럼 비속살해죄도 신설하는 방안을 포함해 양형기준 강화 등 사법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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