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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포럼] 자율주행의 완성, 차(Car)와 인프라를 하나로 묶는 'SW 플랫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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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모 엠큐닉 대표이사

유승모 엠큐닉 대표이사

자율주행의 경쟁 축은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라이다·레이더·카메라 같은 센서 하드웨어와 전장(ECU) 성능이 승부처였다면, 지금은 소프트웨어(SW)를 넘어 '데이터로 학습하는 인공지능(AI)'이 판도를 다시 쓰고 있다. 테슬라가 최근 FSD(Full Self-Driving) 업데이트에서 '엔드 투 엔드(End-to-End) 신경망'을 전면에 내세우며, 기존의 방대한 규칙 기반(Rule-based) 코드를 대폭 줄였다고 밝힌 것은 이러한 변곡점을 상징한다.

이는 자율주행이 더 이상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주행하라'는 규칙의 총합이 아니라, 경험 데이터에서 추출한 패턴을 통해 확률적으로 판단하는 영역으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설명 가능성, 검증 난이도, 데이터 편향과 같은 'AI의 숙제'가 도로 위 안전 이슈로 직결된다는 점도 명확해졌다.

문제는 한국의 선택이다. 테슬라식 엔드 투 엔드 접근을 따라가려면 단순히 AI 모델을 개발하는 수준을 넘어, 수년간 축적된 실제 주행 데이터와 학습 파이프라인, 그리고 막대한 연산 인프라가 필요하다. 후발 주자가 동일한 궤적을 답습하기에는 비용과 시간의 장벽이 너무 높다. 따라서 한국의 전략은 '차량 하나를 얼마나 똑똑하게 만들 것인가'에 머물러선 안 된다. 필자는 오히려 '혼재 교통(Mixed Traffic)'이라는 현실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가까운 미래의 도로 위에는 세 가지 주체가 동시에 달릴 가능성이 크다. 불확실성을 품은 '인간 운전자', 법규 로직에 충실한 '규칙 기반 자율주행차', 그리고 데이터로 학습돼 인간처럼 유연하지만 때로는 공격적으로 보일 수 있는 '학습 기반 자율주행차'가 한 공간에서 상호작용하게 된다. 같은 교차로에서도 누군가는 안전을 위해 멈추고, 다른 누군가는 '흐름상 진입 가능'으로 판단해 진입할 수 있다. 이러한 행동 철학의 불일치는 교착 상태(Deadlock)나 급정거 같은 비정상 이벤트를 증폭시키고, 결국 안전과 교통 효율을 동시에 저해한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운전자들이 뒤섞이는 도로 위 '바벨탑'이 현실화되는 셈이다.

미국과 중국의 흐름은 이 문제의 실체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미국은 다양한 방식의 기술이 실도로에서 경쟁하며 검증되고 있고, 중국은 엔드 투 엔드 전환을 서두르는 동시에 데이터의 자국 내 보관과 표준 생태계 구축을 국가 전략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결론은 공통적이다. 자율주행은 더 이상 차량 내부의 단일 기술이 아니라, 데이터·운영·거버넌스가 결합된 '시스템 경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취해야 할 현실적 해법은 무엇인가. 필자는 '도시 단위 플랫폼 SW', 즉 교통을 운영체제처럼 다루는 'City OS' 관점이 그 해답이라고 본다. 관제는 단순히 점(위치)을 모니터링하는 수준을 넘어, 도로 위 객체를 디지털 트윈으로 통합해 상황을 예측하고, 필요시 개별 차량에 통일된 '메타 가이드'를 내려 혼재 환경의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


핵심은 '동적 정책 프로비저닝(Dynamic Policy Provisioning)'이다. 교통량, 혼재율, 기상·공사·사고 위험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이 구간은 보수적으로, 저 구간은 흐름을 우선하라' 정책을 구간별로 배포하는 것이다. 자율주행차가 받아들이는 파라미터(추종 거리, 가감속 한계, 진입 마진 등)를 상황에 맞게 조정함으로써, 차량이 알아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제공하는 공통 규율을 통해 알고리즘 간 마찰을 줄이는 접근이다.

이를 현실화하려면 기술만큼이나 제도와 표준이 중요하다. 차량이 플랫폼의 정책을 안전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V2X 기반 인터페이스를 표준화하고, '정책 수신-적용-기록'의 감사 가능 로그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또 혼재 환경에서의 안전을 평가할 공통 시나리오(Edge Case) 데이터베이스 구축, 시뮬레이션-실도로 연계 검증 절차,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운영 규정도 필수적이다. 나아가 특정 구간을 '디지털 안전구역'으로 지정해 속도 조화나 교차로 우선권 등을 SW로 일괄 배포하는 단계적 확산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가 목표로 하는 레벨4 상용화 시점이 다가올수록, 이러한 '운영 인프라'의 완성도가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다.

이 접근은 기술 안보와도 맞닿아 있다. 해외 AI가 국내 도로에서 사실상의 표준이 되면, 업데이트 주기와 판단 기준, 데이터의 흐름까지 외부 기업의 의사결정에 종속될 수 있다. 한국의 복잡한 골목길, 이륜차와 보행자가 혼재된 고유한 환경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다양한 알고리즘이 공존하는 환경에서의 안전 기준을 '국내 규칙'으로 정립하려면, 디지털 관문으로서의 플랫폼 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다.


결국 자율주행은 '한 번의 도약'이 아니라 단계적 진화의 과정이다. 혼재 환경을 전제로 한 플랫폼 기반 운영, 표준화된 정책과 인터페이스, 데이터 거버넌스를 먼저 갖출 때, 한국은 감당 가능한 비용으로 자율주행을 확대하면서도 기술 주권을 지킬 수 있다. 공공은 규율을, 민간은 혁신을 맡는 역할 분담이 병행되어야 한다.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것은 자동차지만, 그 흐름과 안전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SW와 플랫폼이다.

유승모 엠큐닉 대표이사 smyoo@mqn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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