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합작제련소 건립
정상회담 동행 등 '공들이기'
탈중국 밸류체인 '핵심' 부상
안정적 자원·우군 확보 윈윈
MBK·영풍 "법적조치 불사"
미국 정부 등의 고려아연 투자 후 지분율 변화/그래픽=김지영 |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공급망 안정성 확보는 공동과제다. 전략광물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고려아연이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지난 10월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 회장은 미 상무부가 주도해 만든 이 자리에서 고려아연이 50여년간 독자적인 비철금속 공급망을 구축했고 이를 바탕으로 동맹국간 협력을 강화하는 데 촉매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메시지는 확고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15일 고려아연이 미 정부 등의 투자를 바탕으로 10조9000억원 규모의 제련소를 미국 현지에 짓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측은 고려아연이 진행하는 유상증자를 통해서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방식을 취했다. 고려아연 지분 약 10% 취득에 나서며 '최윤범 체제'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것이다.
한화 등 우호지분을 합쳐도 약 32%에 그쳐 MBK파트너스(이하 MBK)·영풍(약 44%)에 밀려온 최 회장 입장에선 미국의 지지가 천군만마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유상증자 참여에 따라 양측의 지분율이 비슷해진다면 현재 이사회 구도(고려아연 11명, MBK·영풍 4명, 직무정지 4명)를 뒤집는 게 사실상 어려워진다.
최 회장 측은 미국의 투자를 성사시키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지난 8월 미국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위한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최 회장이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고려아연은 록히드마틴과 게르마늄 공급·구매 및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을 위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후 최 회장은 수차례 미국 측과 접촉하며 현지 제련소 설립 및 투자유치에 팔소매를 걷어온 것으로 파악된다. 강경화 주미대사 등과 만난 후 제련소 최종 후보지 선정작업을 하기도 했다.
미국 입장에선 고려아연과 같은 우방국의 주요 광물기업이 안정적인 경영체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탈중국 밸류체인' 구축에 힘을 주고 있다. 최근 한국, 일본, 싱가포르, 네덜란드, 영국,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UAE), 호주 등이 함께하는 '팍스 실리카'(Pax Silica) 서밋을 추진하는 게 그 예시다. '팍스 실리카'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미국의 핵심광물 접근성 강화다.
고려아연과 미 정부의 동맹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와 다름없는 셈이다. 고려아연이 미국 제련소를 통해 직접 공급을 추진할 게 유력한 게르마늄만 봐도 중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의 중국산 게르마늄 의존도는 약 23%에 달했다. 게르마늄은 야간투시경 등 방위산업, 태양전지판 등 우주산업, 반도체 공정용 특수가스에 널리 쓰이는 필수금속으로 손꼽힌다.
고려아연이 앞으로 미국 주도 광물 밸류체인의 주요 플레이어로 거듭날지 지켜볼 일이다. 고려아연은 최근 울산 온산제련소에 갈륨공급을 위한 공장을 신설키로 했다. 반도체, LED(발광다이오드), 고속 집적회로 등 첨단산업 분야에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갈륨은 98.7%가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어 고려아연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해지게 됐다.
한편 고려아연 경영권을 노려온 MBK·영풍 측은 법적 조치 등도 불사할 것으로 보인다. 영풍 관계자는 "고려아연이 천문학적 자금과 리스크를 전적으로 부담하면서도 정작 알짜배기 지분 10%를 미국 투자자들에게 헌납하는 기형적인 구조"라며 "이사회의 배임우려는 물론 개정 상법상 이사의 총주주충실의무에 반할 소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최경민 기자 brown@mt.co.kr 김도균 기자 dk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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