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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우롱하는 거 아닌가요?”
지난달 6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재판을 본 상당수 시민의 반응이다.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던 김 전 장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정에서 한 행동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을 응원하는 방청객을 향해 양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TV와 SNS 등에 그 모습이 고스란히 공개됐다. 이후 시민들이 “어디서 쌍따봉이냐”며 비난을 퍼붓게 된 것이다. 이른바 ‘쌍따봉’ 논란이다.
법정 벽 허문 재판 중계
김승현 논설위원 |
지난달 6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재판을 본 상당수 시민의 반응이다.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던 김 전 장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정에서 한 행동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을 응원하는 방청객을 향해 양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TV와 SNS 등에 그 모습이 고스란히 공개됐다. 이후 시민들이 “어디서 쌍따봉이냐”며 비난을 퍼붓게 된 것이다. 이른바 ‘쌍따봉’ 논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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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1심 속행공판 중계, 법정 안 4개 카메라가 촬영
서울중앙지법 유튜브 채널에 내란재판 영상 모두 올려
국민 배신한 ‘전직 대통령’ 사건 때마다 중계 획기적 변화
‘악마의 편집’재판 희화화 우려…신뢰 높이는 운용 필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오른쪽 아래)이 재판을 받는 중에 방청석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올려보이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
불법 계엄의 핵심인 김 전 장관의 행동은 공분을 살 만했다. 그런데, 피고인 입장에선 과거엔 재판에 나와야만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 대다수 국민에게 공개된 측면이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 내란 특검이 기소한 피고인의 재판이 모두 녹화 중계되면서 벌어진 일인 것이다. 1심 속행 공판이 모두 중계되는 건 처음이다. 윤 전 대통령이 증인을 향해 “앉자마자 폭탄주를 막 돌리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어처구니없는 광경도 보게 됐다. 종래엔 국민적 관심을 끈 사건의 선고 공판이나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공개 변론과 선고, 헌법재판소의 공개 변론과 선고만 중계됐다.
판사들에게도 생소한 재판 중계
갑자기 진일보한 재판 중계는 많은 ‘변수’를 만들고 있다. 판사들의 재판 진행과 말투에 대한 혹평과 칭찬이 쏟아진다. 죄를 짓거나 송사를 겪지 않으면 접할 일이 없는 판사들의 재판 진행 실력까지 대중의 입방아에 오르게 된 것이다. 내란 특검이 15일 종료되면서 재판 중계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질 전망이다. 현직 판사들에게도 생소한 상황이다. 법원행정처 출신의 한 판사는 “재판 진행 방식은 정답이 있는 게 아니고 판사마다 다르다. 그걸 SNS로 접하게 되니 적잖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법원은 재판 중계라는 새로운 업무가 생겼다. 초기엔 법정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 촬영하다가 지금은 CCTV 형태의 무인 카메라를 설치했다. 설비와 기술업체 외부 용역 등에 3억여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김건희 특검과 순직해병 특검 재판이 더해지면 중계 업무는 더 늘게 된다. 재판 중계 실무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법과 법정 녹화 시설을 관할하는 서울고등법원의 관계자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내란 혐의 재판이 있는 날이면 법정은 무대가 되고, 법원은 작은 방송국이 된다. 사법 불신의 시대에 닥쳐온 새로운 도전은 기회일까, 위기일까. 지난 11일 그 ‘뉴노멀’의 현장에 가봤다.
클로즈업도 재판장 지침 따라
11일에도 김용현 전 장관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오전 10시 재판 시작 30여 분 전부터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들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청사의 한 사무실에 모였다. 3, 4층에 있는 여러 법정과 가까운 사무 공간에 네댓 개의 모니터와 녹화 장비를 갖춘 데스크가 설치돼 있었다. 그 앞에 법원 직원과 용역업체의 영상 감독이 앉았다. 두 사람이 지켜보는 모니터엔 아직 비어 있는 법정 안 좌석들이 보였다. 법정 안 천장에 설치된 4개의 무인카메라가 비추는 영상들이다. 1~4번 카메라는 각각 판사, 검사, 피고인과 변호인, 증인의 좌석을 향해 있었다. 이들이 발언하면 4개 중 한 개의 화면이 선택돼 녹화된다. 삼중으로 저장해 실수를 방지한다. 규모는 단출하지만, 방송사 부조종실의 중계 시스템과 비슷한 방식이다. 이렇게 중계가 가능한 법정이 서울중앙지법에 3개가 있다.
영상 감독은 판사와 검사, 변호인, 피고인, 증인의 발언이 나올 때마다 화면을 바꿔주는 일을 한다. 그 옆 법원 주무관은 사전에 재판장이 전달한 지침에 맞게 촬영이 되도록 관리한다. 재판장이 PD 역할을 하는 셈이다. 영상 감독은 “통상의 방송 문법과는 다른 촬영”이라고 말했다. 법정에서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져도 함부로 클로즈업하지 않는다. 진행되는 재판 내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다. 초상권 보호가 필요한 증인은 얼굴이 나오지 않게 하고, 법정에서 공개되는 자료 중 민감한 내용이 공개되지 않게 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녹화된 재판 영상은 모자이크 등 후작업을 거쳐 법원 공보관실이 운영하는 웹하드를 통해 언론사에 먼저 전달된다. 이후 서울중앙지법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올린다.
쌍따봉 영상은 재판장이 정면에 보이는 1번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방청석을 향해 손동작을 하는 김 전 장관의 모습은 법원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6시간짜리 동영상의 끝부분에 있다. 화면의 오른쪽 아래에 김 전 장관의 모습이 나온다. 이 영상을 여러 매체가 김 전 장관을 클로즈업한 편집으로 널리 전파했다.
서울중앙지법 유튜브 채널은 이번 재판 공개를 위해 9월 25일 개통했다. 두 달여간 60여 개 재판 영상이 올라와 있다. 각 영상의 조회수는 대부분 수백회 수준이고 전체를 합쳐도 4만 회가 안 된다. 쌍다봉 영상 원본의 조회수는 869회였다. 이 원본을 편집한 수십 개의 뉴스 동영상과 유튜브 쇼츠는 각각 수만~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특검법이 재판 중계 의무화
사상 처음으로 1심 속행 공판이 중계되는 것은 특별검사법 때문이다. 내란특검법은 수사 대상이 되는 대부분의 1심 재판은 중계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 외 관련 재판도 특검 또는 피고인의 신청이 있으면 재판장이 중계를 허가해야 한다고 정했다. 김건희 특검법, 해병 특검법도 특검과 피고인의 신청이 있으면 재판을 중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재판장이 중계를 허가하지 않을 때는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기존 법령이 재판장의 허가를 받아 재판 시작 전과 판결 선고만 중계하게 한 것과 대비된다.
내란특검법의 ‘재판 중계 의무화’에 대해 윤석열 전 대통령 측은 반발했다. 지난 10월 해당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했다. 재판 중계 의무 조항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재판은 계속 중계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 때 선고 중계
재판 중계의 변곡점을 ‘피고인 대통령들’이 만들었다는 사실은 한국 사법 역사의 상징적 단면이다. 국민을 ‘배신’한 대통령은 국민적 공분을 키우고 알 권리의 정당성을 극대화했다. 재판부의 개정 장면이 TV로 촬영된 대표적인 사건은 1996년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재판이다. 12·12 및 5·18 사건 1심 선고 공판은 개정 직후 모습에 대한 TV 카메라 촬영이 허용됐다. 2017년엔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 대한 1·2심 주요 재판의 선고가 중계됐다. 당시 대법원은 대법관회의를 열어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했다. 1·2심 재판의 촬영을 공판 또는 변론의 개시 전에 한한다고 정한 것을 ‘공판 또는 변론의 개시 전이나, 판결 선고 시에 한한다’고 바꿔 재판장의 허가를 통한 선고 중계가 가능해졌다.
확 달라진 재판 중계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판결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무죄 추정의 원칙과 피고인의 방어권이 침해되고 법원 판단에 여론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단점도 거론된다. 유튜브에 올린 영상은 언제까지 게시해야 하는지, 일반 재판은 어느 정도까지 중계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없는 상태다. 서울중앙지법 유튜브 채널엔 ‘허가 없이 재판 영상을 복제, 재가공, 전송, 배포하는 등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있다.
해외 선진국의 재판 중계도 천차만별이다. 미국은 주마다 차이가 크지만, 민간 방송업자가 재판 공개 전문 채널을 운영할 정도로 활성화한 편이다. 고(故) 프랭크 카프리오 판사는 교통법규 위반 사건 등에서 인간미 넘치는 재판으로 사건 당사자들을 감복시키는 모습이 SNS를 통해 전해지며 한국 네티즌에게 ‘최고의 판사’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미 연방법원은 재판 중계를 확대하면서도 소극적인 편이라고 한다.
영국은 주요 사건의 선고 절차 등 제한된 범위에서 재판 중계가 이뤄지고 있다. 독일은 인터넷을 이용한 재판 중계는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제한적 범위에서 재판 중계를 허용한다. 프랑스는 헌법재판 중계는 허용되지만, 행정재판과 형사재판의 녹화는 금지하는 게 원칙이다. 일본은 피고인 착석 이후의 법정 촬영은 허용되지 않는다.
“공익성 큰 사건 중계 확대 필요”
법원행정처가 지난 9일부터 3일간 개최한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에서도 재판 중계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정치·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의 재판 중계는 절차적 정당성을 높이고 사법 불신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 중계 부담으로 증인과 재판장 등의 진술이 위축돼 진실 발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측면 등이 두루 논의됐다. 재판의 흐름을 왜곡해 아주 짧은 부분만 추출·편집한 영상은 국민의 알 권리 증진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영국 대법원은 오락·풍자 목적으로는 재판 중계 영상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공청회 발제를 한 유아람 부장판사는 “공익성이 큰 사건을 중심으로 재판 중계 확대를 검토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지만, 쇼츠 형식의 자극적인 사후 편집 영상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법원 관계자는 “이제 시작 단계라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재판 희화화 등이 우려스럽지만, 그런 현상도 겪어 보면서 운용의 묘를 살려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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