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석 도쿄 특파원 |
얼마 전 일본 일간지 기자와 자민당 관계자와 함께 저녁 식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이다. 아베 전 총리에 대한 한국 정서를 고려하더라도 양국 정상이 헌화하는 장면이 미디어를 통해 생중계되고 신문에 실리는 상황을 떠올려보니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 같았다. 나라를 정상회담 장소로 정한 데는 분명 이런 뜻도 있을 거라며 의미를 부여하고는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실제로 지난 10일 마이니치신문에 관련 보도가 실렸다. 한·일 양국이 정상회담 때 아베 전 총리에게 헌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쯤 되니 실현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베 전 총리가 총격으로 사망한 2022년 7월 8일 오후, 사고 현장에 헌화하는 시민들. [연합뉴스] |
아베 전 총리는 금기선을 넘어버리는 발언들로 일본 정치 판도를 바꾼 인물이었다. 위안부 문제의 강제성을 부인하거나 올바른 역사 인식을 자학 사관으로 폄훼하는 우익 사고방식을 주류 정치로 끌어올렸다. 속내는 그럴지라도 표현하지 않던 ‘침묵의 규칙’을 바꿔 과거사에 예민하게 만들었다. 그런 아베가 여전히 일본에선 존경받는 정치인이다. 매년 7월이면 나라의 야마토사이다이지(大和西大寺) 역 앞에는 그를 기리며 헌화하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이런 정치인의 피격 장소를 한국의 정상이 찾아간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비판이 쏟아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사실 지금의 여당에서만 가능한 시나리오일 수도 있겠다.
이 대통령이 만약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와 함께 헌화한다면, 반드시 아베를 기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순히 과거사를 덮는 한·일 화해 제스쳐로 해석한다면 이 또한 본질을 놓친다. 화해의 대상이 아닐지라도 손을 내민 사례는 존재한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국민 화합을 위해 백인 지배의 상징이던 스프링복스 럭비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고 응원했다. 샤를 드골 프랑스 전 대통령은 독일을 방문해 독일 청중들 앞에서 ‘독일 만세’를 외쳤다. 사과 없는 구조적 가해를 넘어 피해자가 먼저 보듬어 안은 장면들로 우리는 기억한다. 피해를 호소하는 데만 머무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약자의 프레임 속에 가두게 된다. 강자는 과거를 잊지 않되, 그 과거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관계를 재설정해 미래로 나아가는 선택, 그것이야말로 도덕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우위에 서는 길이다.
정원석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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