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옥 작가·문예평론가 |
■
20년간 신춘문예 떨어진 지인
‘주문형 출판’으로 마침내 첫 책
매일 쓰는 사람이 진정한 작가
김지윤 기자 |
신춘문예는 작가의 등용문이다. 물론 각종 공모전에 당선되거나 문예지에 추천받아 등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등단하고도 책을 내지 못한 작가도 많다. 책을 출간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작품 활동과 더불어 인연이 되는 출판사를 기다려야 한다. 최근에는 그 과정을 뛰어넘어 출판사에 직접 투고한 원고가 책이 되면서 작가의 길을 걷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해외에선 오래전부터 작가의 등단은 출판사 편집장의 안목이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헤밍웨이도 처음엔 여러 출판사에서 수없이 퇴짜를 맞았던 문학 낭인이었다. 그를 알아본 이는 미국의 작가 제조기, 맥스 퍼킨스 편집장이었다.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도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하다 13번째로 찾아간 출판사의 편집장 나이절 뉴턴을 만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강철 군화』의 작가, 잭 런던도 60곳 이상의 출판사에서 거절당했지만, 그를 눈여겨본 편집장을 만나 첫 책을 낼 수 있었다. 공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도 30곳 이상의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아 작가의 꿈을 접었다가 편집장 빌 톰슨을 만나 유명작가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시인이자 언론인이었던 신동문 편집장은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 『광장』의 최인훈과 『알렉산드리아』의 이병주를 발굴했다.
편집자는 원고를 검토하고 수정하면서 작품의 방향을 작가와 함께 설정한다. 가끔 책에도 운명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만났을 때 책은 살아 있는 유기체가 된다.
신춘문예에서 원고의 작품성을 본다면 출판사는 작품성과 함께 상업성을 염두에 둔다. 영화 ‘지니어스’를 관람한 이들은 독자의 가독성을 위해 문장을 사정없이 쳐내는 편집장과 자기 문장을 지키려는 작가와의 눈물겨운 투쟁(?)에 감탄을 자아냈으리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출판사와 자신의 작품을 고수하려는 작가와의 충돌은 흔한 일이다. 더욱이 출판사가 무명작가의 책을 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도박에 가깝다. 독서 인구는 감소하고 유명인의 책을 발간해도 매출이 신통치 않으니, 출판사 입장에서 쉽게 책을 낼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자비로 책을 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나의 지인 중에 20여 년을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작가 지망생이 있다. 그의 글은 좋게 말하면 담백하고 달리 말하면 심심하다. 꾸밈없이 가난한 그의 문장에 살림살이를 보태듯 윤택한 단어를 얹어주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는 여전히 글쓰기 강의를 듣지만, 신념(?)의 문장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그가 얼마 전 자신의 책을 발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축하 인사와 함께 그의 책을 사서 읽어보겠다고 출판사를 물었다. 그는 머뭇거리더니 피오디 출판이라고 했다. 나는 잠깐 눈을 껌벅거리다 곧 그가 주문형 출판을 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POD(Print On Demand)는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인쇄하고 제작하는 출판 방식이다. 원고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두 달 동안 그의 책은 세 권이 팔렸는데 내가 세 번째 주문자였다. 첫 번째 주문자는 작가였을 것이다. 대형 온라인 서점에 걸린 그의 책은 배송기간만 일주일이 걸렸다. 책은 표지와 편집이 초등학교 교과서 같았다. 나는 문득 그가 자기 책을 갖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글을 읽다가 코끝이 찡해졌다.
“신인 작가들의 화려한 경력을 보면 나는 기가 죽는다. 또 유명 시인과 작가들의 수상 경력을 보면 또 풀이 죽는다. 언론사의 신춘문예로 등단해서 수많은 상을 탄 경력을 보면 나는 또 주눅이 든다. 밤낮없이 글과 씨름해도 좋은 작품이 나올까 말까인데 나는 밥벌이를 위해 밤낮없이 일한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생각을 모아 겨우 글을 쓴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90년생이 온다』의 작가 임홍택도 피오디 출신이고 『토마토 컵라면』의 차정은도 그렇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유명한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도 아마존 피오디 작가의 책이 원작이다. 그들의 책을 거절한 출판사는 얼마나 운이 없는 거냐?
그대는 신춘문예 당선에 연연하지 않기 바란다. 매일 글을 쓰는 당신이 진짜 작가다. 신춘문예가 그렇게 대단하면 그 많은 당선자는 다 어디로 갔느냔 말이다.
김미옥 작가·문예평론가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