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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유족 절규에 멈칫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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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타워 참사가 난 지 엿새째 밤. 취재수첩을 들고 울산 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지만, 그곳 공기는 침통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붕괴 사고 이후 세 번째 수습된 60대 근로자의 시신이 들어오는 순간 안치실에서 울음이 터졌고 병원 복도 전체가 그 소리에 잠겼다.

기자는 남편을 잃은 아내가 복도 한가운데서 그대로 주저앉아 오열하는 모습을 몇 걸음 앞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기자의 본능보다 지금 내가 던질 질문이 상처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 먼저 들었다.

이보람 사회2부 기자

이보람 사회2부 기자

참사 현장에서 취재기자는 늘 두 갈래 감정 사이에서 머뭇댄다. 사건의 원인과 책임을 기록해야 한다는 직업적 의무와 유족의 슬픔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간적 판단이다. 병원 장례식장에서는 후자가 압도적이었다. 병원 도착 직후부터 ‘지금 이 질문은 필요하지 않다. 지금은 아니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취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결국 “어떤 남편이셨나요”라고 물었지만 돌아온 것은 대답 대신 싸늘한 시선. 곧이어 “기자들 곧 몰려올 거예요, 움직이세요”, “사진 찍지 마세요” 같은 거친 말들이 사고 현장 관계자들 입에서 쏟아졌다. 기자가 참사 앞에선 ‘또 하나의 부담’, ‘되도록 피해야 할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울산화력발전소 참사의 본질은 분명히 취재를 요구하고 있었다. 취약화 작업 과정의 미비는 물론 근로자들의 안전관리 체계, ‘건축물’과 ‘공작물’ 등 관리 사각지대를 만든 구조적 결함까지. 이들 문제는 드러나야 하고 기록돼야 했다.

마지막 매몰자가 수습되기까지 14일 동안 소방 구조팀은 추가 붕괴 위험 때문에 중장비조차 제대로 투입하지 못했다. 결국 양옆 타워를 폭파해 치우는 이례적인 조치까지 감행했다. 생존자 2명은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고 했다. 7명은 잔해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참사의 기록 과정이 유족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긴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질문 한 번을 할 때마다 기자가 그 고통을 직접 확인하는 일이 반복된다. 이것이 참사 현장에서 기자가 맞닥뜨리는 가장 직접적인 딜레마일 것이다. 참사 취재는 언제나 논쟁적인 순간의 연속이다. 유족에게 너무 빨리 다가가면 무례가 되고, 너무 늦게 다가가 질문하면 중요한 진실을 놓쳤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울산화력발전소 참사 현장에서 머릿속을 가장 강하게 맴돈 질문은 이것이었다. “내 질문은 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남기는가.” 이 질문을 외면한 취재는 폭력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질문을 이유로 취재 자체를 포기하면, 공적 진실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다.

이 같은 기자 딜레마의 완벽한 정답은 없다. 각 현장에서 상황마다 스스로 판단하고 감당해야 할 몫이다. 울음이 터져 나오는 장례식장, 분노가 쏟아지는 유족들. 그때마다 같은 질문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된다. “지금 취재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고통을 건드리고 있는가.” 이번 울산 참사가 내게 남긴 가장 오래갈 질문이다.

이보람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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