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불임’이라는 표현이 사라지고 ‘난임’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한국난임가족연합회는 2003년 ‘아가야’라는 작은 자조 모임에서 시작해 20년 넘게 난임 가족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들으며 함께해 온 단체이다. 난임이라는 언어의 정착과 치료 건강보험 급여화를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고, 이제는 난임 부부가 일상 속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과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난임치료휴가가 ‘존재하는 제도’를 넘어 ‘사용되는 제도’로 변화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명대에 머물러 있다.
저출산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중 난임은 개인의 어려움으로만 여길 수 없는 사회적 현안이 됐다. 이러한 배경에서 정부가 마련한 난임치료휴가 제도의 확대는 의미 있는 변화이다. 올해부터 난임치료휴가는 기존 3일에서 6일로 늘어났고, 유급 기간도 2일로 확대되는 등 제도의 외형은 확실히 커졌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명대에 머물러 있다.
김명희 한국난임가족연합회장 |
그러나 여전히 많은 난임 부부가 이 제도를 알지 못해 못 쓰거나, 알아도 눈치가 보여 사용하지 못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난임치료휴가가 법정휴가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업에서는 취업규칙에 명시하지 않아 직원들이 “우리 회사에는 그런 제도가 없다”고 오해하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다.
난임 치료는 단순히 병원을 한두 번 방문하는 일정이 아니다. 한 달 가까운 기간 동안 호르몬 주사를 맞고, 피검사와 초음파를 반복하며, 치료 결과를 기다리는 불안과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임신에 성공하더라도 안정기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조심스러운 날들이 이어진다. 이 모든 과정은 몸의 피로 이상으로 마음의 무게를 동반한다. 이런 여정 속에서 난임치료휴가가 ‘눈치 보는 휴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난임치료휴가가 본래의 목적을 다 하기 위해서는 사회 모두의 역할이 필요하다.
첫째, 정부는 제도 안내를 더 강화해야 한다. 제도가 있음에도 몰라서 사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계속되는 것은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난임치료휴가가 국민의 실질적 권리임을 명확히 알릴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홍보가 필요하다.
둘째, 기업은 취업규칙에 난임치료휴가를 명확히 기재하고, 개인정보 보호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결재 라인을 최소화하고, 난임치료휴가 신청이 직원에게 불필요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난임 치료는 민감한 의료 정보와 직결되기에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셋째, 동료 근로자의 조용한 이해와 배려가 무엇보다 큰 힘이 될 수 있다. 난임치료휴가 사용 여부나 결과를 묻기보다,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함께 일해주는 것만으로도 당사자에게는 큰 위로와 보호가 된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배려가 가장 깊은 응원이 된다.
난임 부부를 위한 제도는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제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부의 정책, 기업의 운영, 그리고 동료의 마음이 함께 움직일 때 난임치료휴가는 비로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 생명을 기다리는 부부에게 우리가 건넬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거창한 지원이 아니다. 그들이 눈치 보지 않고, 숨지 않고, 존중받으며 치료받을 수 있도록 사회 전체의 따뜻한 배려가 필요한 때이다. 그 응원과 배려가 모일 때, 우리는 난임 부부의 기다림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명희 한국난임가족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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