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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정의 톱밥 먹는 중입니다] [11] 나는 실업급여 ‘자격 미달’ 칼럼니스트입니다

조선일보 류호정 목수, 前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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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업했지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구직급여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며 구직(창업)을 준비하려 했다. 나는 고용보험 가입 기간이 충분하고, 비자발적 퇴사를 했으며, 구직할 의사와 능력이 있으므로, 수급 자격이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판단은 달랐다. 내게는 자격이 없다고 했다. 쿠팡 알바 탓이 아니다. 놀랍게도 내가 ‘칼럼니스트’이기 때문이다. 나는 월 2회 ‘정기적’으로 칼럼을 쓴다. 고로 내게는 ‘근로자성’이 있고, 실업급여는 받을 수 없다.

칼럼 기고가 ‘비정기적’이었으면 달랐을 거란다. 아, 그렇군요. 우리 근로기준법은 노동하는 사람 모두를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국회에 있을 때 나와 내가 속한 진영은 근로자성 확대를 위해 투쟁하고, 정치했다. 일하는 시민의 기본적 생활 보장과 노동 조건 향상을 위해서였다. 눈부신 성과를 내지 못했음에 늘 죄스러운 마음이었는데, 구직급여 미지급 사유에서 이런 폭넓은 아량과 포용을 만날 줄은 몰랐다.

담당자는 무서운 사례를 알려줬다. 어떤 사람은 매주 1회, 같은 요일에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이유로 실업급여를 반환당했단다. 상상해 보자. 그분은 아마 급여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을 테고, 따라서 작은 알바를 하나 했을 테다. 나머지 요일엔 취업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계획적 성실함의 대가는 급여 반환이다. 문득, 성실하면 손해를 본다는 말이 생각났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나는 호소했다. “칼럼 원고료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불가능하다. 한 달만이라도 급여를 받고, 안정적으로 창업 준비를 하고 싶다.” 곤란해하며 듣던 담당자의 옆자리 공무원이 중얼거렸다. “칼럼 쓰면 문화예술인 아닌가?” 아, 그렇군요. 다시 국회를 떠올린다. “문화예술인도 노동자다! 근로자성을 인정하라!” 그들의 요구가 이렇게 쉽게 수용될 줄이야.

자발적 이직 청년 생애 1회 구직급여 지급, 청년 구직활동 지원금 확대, N잡러를 위한 고용보험 가입 기준 전환.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다. 청년의 원활한 진로 모색을 돕겠다고 한다. 그러나 나와 급여를 취소당한 그분에게는 작은 울타리도 없다. ‘각자도생’이다.


고용보험에 가입해 보험료를 납부했다는 것, 원치 않게 실직했다는 것 외에 실업급여를 받아 마땅한 자격 같은 건 없다. 노동 3권을 보장하랄 땐 야박하고, 급여를 달랄 땐 너그러워지는 근로자성 인정은 코미디 같은 모순이다. 소년공 출신 대통령과 철도 노동자 출신 장관이 고쳐야 할 고장이다.

실업급여 신청을 포기하는 문서에 서명하고 나오는 길, 쿠팡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신청했다. 고용보험 가입 기간이 말소되는 건 아니니, 구직급여는 언젠가 받을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씁쓸하다. 내 울타리는 결국, 나밖에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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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정 목수, 前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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