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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더는 미룰 때 아니다 [박찬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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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주도 헌법개정 전국 네트워크(시민개헌넷)를 비롯한 시민단체, 정당 및 국회의원들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본청 앞에서 ‘내란 종식을 위한 헌법 개정’을 촉구하는 시국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시민주도 헌법개정 전국 네트워크(시민개헌넷)를 비롯한 시민단체, 정당 및 국회의원들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본청 앞에서 ‘내란 종식을 위한 헌법 개정’을 촉구하는 시국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박찬수



이재명 정부는 지난 9월 123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개헌’을 첫번째 과제로 제시했다. ‘국민주권 강화와 책임정치 실현을 위해’ 대통령 4년 연임제 및 결선투표제 도입을 명시했다. 개헌을 맨 앞에 놓은 건 이에 관한 대통령 의지가 강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최근 “대통령의 개헌 의지는 분명하다. 최근에도 만나서 서로 (의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적극적 의사 표명에도 불구하고 지금 분위기론 개헌은 쉽지 않아 보인다.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1차 개헌안을 마련해 내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로 인준받지 못하면, 역대 정부에서 그랬듯이 개헌은 또다시 물 건너갈 가능성이 크다.



개헌이 추진력을 쉽게 얻지 못하는 이유는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와 동떨어진 사안이란 인식이 작지 않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3일 불법 계엄으로 나라 전체가 1년간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개헌이 국민 생활과 관계없는 ‘정치인들만의 일’은 아니다. 12·3 계엄은 21세기에도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군 병력을 동원해 내란을 획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계엄 요건을 ‘전시·사변 수준의 무력 충돌 또는 무력 위협’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국회 사후 동의를 명시하는 등의 헌법 개정이 시급한 이유다. 계엄을 막아낸 국민 열기를 바탕으로 지난 6월 대통령 선거 때 이런 방향의 1차 개헌 국민투표가 이뤄졌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5년 단임 대통령’의 문제다. 최근 특검 수사 내용을 보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의대 정원의 증원 규모를 2천명으로 정한 건 순전히 주먹구구식의 고집 탓이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충분히 많이 늘리라’고 하니까 현실적 수급 대책에 대한 고려 없이 1만명이란 목표를 먼저 정하고, ‘임기 5년간 매년 2천명씩 늘려 1만명을 맞추자’는 결정을 했다고 한다.



이런 식의 정책 결정이 두고두고 어떤 논란과 문제를 초래할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임기 중에 화끈하게 ‘한 건 하겠다’는 생각뿐이다. 5년 단임제는 ‘5년 임기만 채우면 된다’는 식의 책임지지 않는 국정운영을 부추긴다. 대통령도 중간 평가를 받는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물론 4년 중임제 아닌 내각제 개헌도 선택지 중 하나다. 하지만 국민 정서를 생각하면 내각제 개헌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개헌을 합의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말했다. 현재 국회 상황으로는 개헌특위를 꾸릴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그러나 좁은 범위라도 여야가 합의해서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치는 건 필요하다. 개헌이 ‘헌법을 완전히 뜯어고치는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가 아니라 순차적, 단계적으로 조금씩 바꿔나가는 작업이란 선례를 세우기 위해서다. 그래야 불평등과 환경권, 지역 분권, 통일 문제 등 국민 의견 수렴이 필요한 2차, 3차 개헌이 가능해진다.



역대 야당이 개헌을 반대한 데엔 ‘집권세력의 장기집권 음모’라는 시각이 깔렸었던 탓이 크다. 이를 피하려면 여당이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해도 헌법 개정은 여야 합의에 기반을 둔다는 국회 차원의 공감대가 필요하다. 개헌 작업은, 내부 갈등이 심각한 국민의힘으로선 ‘윤 어게인’에서 벗어나는 디딤돌로 작용할 수 있다.



내란·외환 특검은 15일 최종 수사 결과 발표에서 “(윤석열 일당이) 국회에서 이뤄지는 정치활동을 반국가행위로 몰아 내란을 획책했다”고 밝혔다. 부인 김건희씨와 사전 모의해서 계엄을 한 것은 아니고, 김씨가 ‘너 때문에 망쳤다’며 윤석열과 싸웠다는 진술도 있었다고 한다. 만약 윤석열이 계엄령에 의존하지 않고 ‘임기 단축 개헌’을 선택했더라면, 국민이 이렇게 고통받고 가슴을 졸이진 않았을 것이다. 5년간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다 퇴임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대통령이 탄생하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갖췄다면, 윤석열의 집권 2년6개월 동안 경제가 추락하고 정책이 혼선을 거듭하는 국정 난맥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검 수사를 끝내고 윤석열 일당을 기소하는 건 내란 재발을 막기 위한 출발점일 뿐이다. 이제 국회가 더는 ‘제2의 윤석열’이 나오지 않게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물론 개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마법의 탄환’은 아니다. 그래도 1987년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사회적 변화를 담아내는 새로운 시작은 될 수 있다.



대기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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