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1.0 °
매일경제 언론사 이미지

[충무로에서] 행복한 나라 덴마크에 이민자의 자리는 없다

매일경제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원문보기
김슬기 글로벌경제부 차장

김슬기 글로벌경제부 차장

지난여름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을 찾았다가 여러 번 충격을 받았다. 첫째로 건축 거장의 건축물로 채워진 아름다운 도시 경관과 여유로운 시민의 모습 때문이었고, 둘째로 살인적인 물가 때문이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만달러인 부국에서 나는 한 도시가 이렇게까지 아름답고 부유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알고 보니 이 작은 나라는 비만약 위고비의 노보노디스크, 세계 정상의 해운사 머스크, 그리고 레고 보유국이었다. 게다가 덴마크는 유엔이 발표하는 전 세계 행복지수에서도 수년째 1위를 지켜온 나라다. 초여름 운하로 옷을 훌훌 벗고 뛰어드는 소년들을 보면서 지상 천국이 여기구나 싶었다.

가장 이질적인 자각은 유럽 20여 개 나라를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노숙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왔다. 물가도, 추운 날씨도 이유가 아니었다. 비결은 폐쇄적 이민 정책이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덴마크의 '독특한 이민 정책'을 분석했다. 덴마크는 2015년부터 이민 정책이 강력해지기 시작했고, 2019년 좌파 사회민주당의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가 취임한 후에도 가속페달을 밟았다. 덴마크의 좌파 정부는 다른 나라의 극우 정부처럼 난민 심사를 까다롭게 하고, 난민을 수용한 이후에는 철저히 덴마크 사회로 통합하는 정책을 편다. 영주권 취득 절차를 더 길게 만들고 예비 난민 수용시설도 줄였다.

높은 세금을 걷는 이 복지 강국은 급격한 이민이 불러올 문제들을 감안해 '반이민 현실주의'로 대항했다. 2015년 약 2만명이었던 덴마크 난민 신청자는 작년 2000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유럽은 좌파와 우파의 온갖 정치 실험이 벌어지지만, 모든 나라가 '반이민'을 향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띤다. 좌파 노동당으로 정권 교체를 한 영국조차도 덴마크를 통해 배우고 있다.

나이절 패라지의 영국개혁당은 정책이 도널드 트럼프와 판박이인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다. 패라지는 "고장 난 영국을 고치겠다"며 영불해협을 건너는 보트를 막고 이민자를 0명으로 틀어막겠다고 외친다. 세금 감면, 친환경 규제 철폐, 영국 우선주의를 내건 패라지가 젊은 세대의 폭발적 지지를 얻으면서 보수당은 전례 없는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많은 유럽인은 자국의 실업과 경제적 양극화, 주택난을 이민자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부유한 덴마크의 정치 실험이 성공한다면, 유럽의 젊은 세대는 더 포퓰리스트에게 표를 던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이제 트럼프는 어느 나라에나 있다. 이민자 앞에선 좌파도, 우파도 없다. 씁쓸한 유럽 정치의 현실이다.

[김슬기 글로벌경제부 차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시드니 총격 테러
    시드니 총격 테러
  2. 2재키와이 데이트 폭력
    재키와이 데이트 폭력
  3. 3석현준 용인FC 입단
    석현준 용인FC 입단
  4. 4러시아 유로클리어 소송
    러시아 유로클리어 소송
  5. 5리헤이 뮤지컬 시지프스
    리헤이 뮤지컬 시지프스

매일경제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