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일 서울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공공연대노동조합, 돌봄하루멈춤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처우 개선 등 관련 내용이 담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
최혜지 |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살 만하신가요? 사람마다 내놓는 답변은 다양하겠지만, 우리 사회 전체의 대답은 출산율로 가늠된다. 출산에 대한 결정은 속해 있는 사회가 어떤 곳인가에 대한 가장 이성적이고 냉철한 평가를 숫자로 가시화한다.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자녀를 출산하거나 혼자 살기도 버거운 곳에 책임져야 할 존재를 만드는 일은 주저되기 때문이다. 2025년 기준 대한민국 합계 출산율 0.82(1분기 기준)는 “살 만하신가요?”라는 질문에 사회 전체가 내놓은 답이다.
우리 사회가 살 만한 곳이 되기 위해 충족해야 할 조건은 다양하다. 먹고 사는 일, 즉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재화, 건강 유지와 질병 치료를 위한 의료 서비스는 폭넓게 합의된, 살 만한 사회의 조건이다. 반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 양질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가는 최근에 이르러 살 만한 사회의 조건으로 주목받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인 초저출산율은 우리 사회가 양질의 돌봄을 기대하기 어렵고 또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 큰 희생이 따르는 ‘돌봄 무능’ 사회임을 잘 드러낸다.
전통적으로 아동, 노인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는 일은 가족 내에서 여성의 무급 노동을 통해 해결되었다. 남성은 생계를 책임진다는 이유로 가족을 돌보는 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러나 일자리의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여성 노동력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증가하면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증가해 왔다. 더 이상 여성의 활동 장소와 역할은 가정과 돌봄으로 제한되지 않으며, 여성의 생애주기는 빠르게 남성화되었다. 그러나 남성 생애주기의 전환이 지체되면서 돌봄의 책임은 여전히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다. 누구도 예외 없이 타인의 돌봄에 의지해 성장하고 삶을 유지함에도 돌봄에 대한 책임은 모두가 고르게 부담하지 않는 부정의가 뚜렷하다.
가족이 아동이나 노인 돌봄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면서 국가가 공적인 제도를 통해 돌봄을 지원하는 돌봄의 사회화가 불가피해졌다. 그런데 돌봄의 사회화, 즉 공적인 돌봄 서비스의 제공은 돌봄 노동자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 그간 돌봄이 주로 무급 노동으로 이루어져 온 관성으로 인해 돌봄 노동은 유급 노동으로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저임금의 여성 일자리로 고착하고 돌봄의 여성화가 심화하였다. 특히 돌봄 노동자가 어떤 처우를 받는가는 노동자가 제공하는 돌봄의 질과 상관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낮은 처우를 받는 돌봄 노동자에게 질 높은 돌봄을 요구하는 것은 명확한 한계를 갖는다.
이는 우리가 좋은 질의 돌봄을 받고, 또 타인을 돌보는 것이 헌법에 명시된 인간다운 삶의 조건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돌봄을 받고, 또 돌봄을 제공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이며, 이를 보장해야 하는 책무가 국가에 있음을 공식화하여야 한다. 시민 모두가 타인을 돌보는 책임 또한 고르게 감당하고, 돌봄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는 ‘돌봄 정의’를 추구하여야 한다. 좋은 질의 돌봄을 받기 어렵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돌볼 수 없는 우리 사회가, 이 같은 사회적 토대 위에서 비로소 살만한 곳으로 전환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이 돌봄권과 ‘돌봄 정의’의 법적 근간이 되는 돌봄기본법의 제정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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