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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학점제 바로 알기’ 연속 기고 ⑥
박시영 | 미사고 교사·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운영국장
“중학생 때는 그냥 정해진 시간표대로 수업을 들었는데, 고교에 와서 갑자기 ‘네가 선택해’라고 하니까 너무 막막해요. 뭘 기준으로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느 고1 학생의 솔직한 고백이다. 올해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이 학생의 고민은 현재 많은 학생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현실이 되었다.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진로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자기 주도적 인재로 성장한다는 고교학점제의 취지는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반드시 보완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중학교와 고교가 연계된, 체계적인 진로 교육이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서 나타나는 현실적 과제 중 하나는 ‘선택의 주체’인 학생들의 준비 부족이다. 중학생 시절 막연한 직업 탐색 수준에 머물렀던 학생이 고교에 입학하자마자 수많은 과목 중에서 곧바로 학업 경로를 설계하라고 요구받는다면, 이는 의미 있는 선택보다는 막연한 부담감을 안겨줄 우려가 있다.
중요한 것은 고교학점제를 ‘조기 진로 결정’의 압박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학생들에게 너무 이른 시기에 진로를 확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부담될 수 있다. 많은 학생들이 중학교 시절은 물론 고교 시기에도 여전히 자신의 관심사와 적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고교학점제를 ‘진로 결정’보다는 ‘진로 탐색의 확장된 기회’로 접근해야 한다. 중학교에서 발견한 작은 호기심이 고교에서 다양한 과목 선택을 통해 더 깊이 탐구될 수 있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탐색과 경험의 과정이야말로 고교학점제가 지향하는 진정한 가치다.
이런 맥락에서 중학교 교육과정과의 유기적인 연계는 더욱 중요해진다. 중·고 연계 교육의 목표를 학생들에게 섣부른 진로 결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탐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으로 설정해야 한다. 특히 중학교에서 운영 중인 자유학기제와 진로 연계 교육을 고교학점제와 연결하되, ‘진로 결정’이 아닌 ‘관심 영역 발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학생들이 발견한 흥미 분야가 고교의 어떤 교과목들과 연결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목들을 통해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지를 안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디어 콘텐츠 제작에 흥미를 보인 중학생이라면 고교에서 ‘매체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문학과 영상’, ‘미디어 영어’, ‘사회문제 탐구’, ‘정보’, ‘미술과 매체’, ‘음악과 미디어’ 등 다양한 과목을 경험할 수 있음을 안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은 관심사를 심화·확장할 수 있으며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관심사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고교학점제의 장점이다.
또한, 인근 고교와 연계한 ‘과목 체험 프로그램’이나 고교 선배들의 ‘선택 경험 나누기’를 활성화한다면, 학생들은 진로를 정하는 부담 없이도 더 구체적인 탐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고교학점제 시행과 함께 교사의 역할은 특정 진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 탐색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중학교에서 관심 발견, 고교에서 심화 탐색으로 이어지는 점진적 진로 탐색 모델이 자리 잡는다면, 학생들은 진로 결정의 부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다.
물론 현실의 벽은 존재한다. 현재 학생들의 과목 선택이 대학 입시의 유불리에 크게 좌우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한계다. 이는 고교학점제 단계적 이행 계획과 달리 내신 상대평가 제도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며, 근본적으로는 고교 서열화를 해소하는 체제 개편이 이루어져야 절대평가 전환도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어떤 유불리를 고민하든 학생들이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학습에 대한 ‘선택권’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고민의 과정 자체가 자신의 진로를 깊이 있게 성찰하는 소중한 경험이 된다는 점은 이 제도가 가진 분명한 의미다.
결론적으로 고교학점제는 조기 진로 결정을 재촉하는 제도가 아니라 더 풍부한 탐색의 기회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인식해야 한다. 학생 한명 한명이 자신만의 속도로 관심사를 발견하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가능성을 확장하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교육, 그것이야말로 고교학점제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이자, 우리 교육의 희망적인 미래가 될 것이다. 탐색 그 자체가 성장임을 인정하고, 학생들이 여유롭게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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