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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환단고기 졸지에 역사 문헌…대통령실 해명이 오히려 문제 키워”

중앙일보 배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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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이재명 대통령의 ‘환단고기’ 언급과 이를 해명한 대통령실의 대응을 두고 “말이 헛나왔다고 사과하면 될 일을 해명이 오히려 사안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진 교수는 “환단고기가 졸지에 역사학의 ‘문헌’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진 교수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환빠(환단고기 추종자)’는 25년 전 철지난 유행인데, 왜 갑자기 다시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번 논란을 단순한 발언 실수가 아닌, 과학과 이성이 신화에 종속되는 사회적 퇴행의 징후로 해석했다.

진 교수는 “나치가 아리아 인종의 기원을 찾겠다며 고고학자들을 세계 곳곳으로 보냈고, 일제가 임나일본부를 찾으려 남의 나라 무덤을 파헤쳤지만 결국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했다”며 “이 모두가 과학이 신화의 신하가 될 때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사안이 대통령 개인의 단순한 실수나 교양의 결핍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류의 지적 흐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인류는 오랜 시간 이야기(뮈토스)에서 이성적 설명(로고스)으로 이행해 왔지만, 최근 다시 로고스에서 뮈토스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며 “다만 이 새로운 뮈토스는 문자문화 이후 등장했기에 스스로를 과학으로 포장하는 특징이 있다”고 분석했다.

진 교수는 그 사례로 김어준씨의 ‘개표 조작 음모론’을 들었다. 그는 “이야기꾼의 허구를 일부 학자들이 전문 용어와 ‘K값’ 같은 개념을 동원해 과학 이론으로 둔갑시켰다”며 “김어준이 세계를 열면 학자들이 들어와 이론적으로 정당화해 주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정치권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진 교수는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멘탈리티 역시 과학이나 이성을 이야기와 신화에 종속시키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만 국민의힘 진영의 음모론에 대해서는 “이성의 잡티가 섞이지 않은 고대적 형태의 허구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앞서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이 지난 12일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 과정에서 ‘환단고기’를 언급한 것과 관련해 “대통령의 발언은 해당 주장에 동의하거나 연구·검토를 지시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국가의 역사관을 책임지는 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해달라는 취지의 질문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환빠 논쟁’이 있지 않으냐”고 물었고, 박 이사장은 “재야사학자들보다 전문 연구자들의 주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며 “역사는 기본적으로 사료와 문헌을 중심으로 연구된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결국 역사를 어떤 시각에서 볼지에 대한 입장 차이인 것 같다”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이후 야권을 중심으로 비판이 잇따랐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환단고기를 관점의 차이라고 하는 것은 백설공주를 실존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했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환단고기는 역사학계에서 위서로 결론 난 지 오래”라며 대통령 발언을 문제 삼았다.


진 교수는 이에 대해 “불필요한 해명으로 신화를 공적 담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데 있다”며 “대통령실 대응이 사안을 정리하기는커녕 오히려 키웠다”고 지적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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