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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칼럼] ‘공정’이란 뇌관을 건드린 권력

중앙일보 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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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대기자

최훈 대기자

1982년 독일 쾰른대에서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란 3년여의 심리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4~10마르크를 A(제안자)에게 주고, B(응답자)에게 마음대로 나눠주라고 한다. B에게 준 나머지는 A의 몫이다. 그런데 B가 “이건 너무 불공정하다”고 여겨 거절하면 자신은 한 푼도 못 받는다. B는 빈손보다는

1마르크라도 받는 게 더 낫다. 결과는 흥미롭다. 제안자들은 대개 30~50%를 제시한다. 그런데 의외로 응답자들은 매우 불공정해 보이는, 특히 20% 이하를 주겠다는 제안은 50%가 아예 거절했다. 상식적으론 이해가 쉽지 않다. 이 실험은 이후 “인간이란 자기 이해를 떠나 일정 수준의 공정성을 본능적으로 중시한다”는 근거로 제시돼 왔다.



통일교 유착 여야 정치인 수사

항소 포기 등 ‘공정 훼손’ 조짐

대한민국 최우선 가치는 공정


공정성 무시 정권은 모두 자멸

신경과학자인 김학진 고려대 교수는 “공정에 대한 욕구는 자신이 사회에서 최대한 많은 이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자존감의 동기에서 비롯된다”며 “불공정하다는 느낌을 받으면 불쾌한 통증을 느끼는 뇌섬엽이 활성화되는 걸 확인할 수 있다”(월간중앙 인터뷰)고 설명했다. 특히 ‘공정’은 한국 사회에선 늘 최우선 가치였다. 우리 국민은 공정(32.4%, 한국갤럽, 2022년)을 자유·법치·정의 같은 다른 모든 가치들보다 중시한다. 특히 수많은 기회와 선택 앞에 설 젊은 층의 공정에 대한 갈망은 압도적이다.

사실 공정(公正)이란 참 어렵다. 대개 기회, 결과, 조건의 평등으로 나눠 논의돼 왔다. 기회의 평등이야 그렇고, 결과의 평등은 인간 능력의 근원적 불평등, 성취와 기여에 의한 배분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해 혼란을 가져온다. 진보 좌파나 사회주의적 사고의 특성이다. 복잡다기해진 요즘 시대에 힘을 얻어 온 공정은 ‘조건’의 평등이다. 기회 평등의 규칙만으론 부족하니 자기 편 봐주기, 불투명, 암묵적 청탁, 특혜와 대가 교환, 부패, 밀실 담합 등 참여자들 간의 은밀한 부조리가 완전 제거된 조건이어야 진짜 공정이란 얘기다. 이 조건의 평등은 특히 정치 권력에 대한 ‘신뢰성’과 매우 밀접하다. 법규·제도로 형식적인 기회의 평등은 존재하지만 구석구석의 교묘한 불공정을 제거해 줘야 하는 게 권력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권력 스스로가 늘 공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역으로 공정을 잃은 권력은 존재해서도 안 되고, 존재할 수도 없다. 자신을 뽑아 준 주권자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준 정부와 권력이 어찌 유지될 수 있겠는가.

최근 대한민국의 권력이 이 공정을 훼손시키려는 듯한 사건이 이어진다. 야당에 대한 통일교의 금품 제공, 신도 동원 의혹을 쥐 잡듯 수사하던 특검 등의 권력이 민주당 정치인들의 금품 수수 의혹엔 쥐 죽은 듯 조용했던 때문이다. 이미 지난 8월 민주당에의 로비 사실도 인지한 것으로 보도된 특검 측은 “진술 내용이 인적, 물적, 시간적으로 명백히 특검법상 수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 검찰이 이리도 별건(別件)수사에 신중한 모범생이었는지…. 윤영호 전 통일교 본부장의 1심 최후진술(10일) 하루 전에 이재명 대통령은 “지탄받을 종교단체는 해산시켜야 한다”고 정색했다. 당장 야당 측이 “불면 죽이겠다며 민주당 쪽 명단은 발설하지 말라는 협박”(한동훈 전 대표)이라고 반발하자,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이 여야, 지위고하 관계없이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고 대응했다. 영화와도 같은 하이라이트, 최후진술에서 윤 전 본부장은 어떤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해산당할 ‘조직’을 보호하려 한 걸까.

대장동 1심에 대한 검찰의 항소 포기야말로 불공정의 극치다. 쟁점이 남은 권력형 비리 사건에의 항소 포기가 법무부·대검 등, 아니 그 윗선과의 교감 때문이란 세간의 인식은 자연스럽다. 반드시 해야 할 공적 책무를 포기한 중대한 공정의 훼손이다. 4895억원 범죄수익 환수가 불가능해진 특혜 시비 역시 당연하다. 물론 이 대통령은 민간업자들과 별도 기소돼 1심 재판을 받다가 취임 후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재판 중인 민간업자들이 어떻게 증언하느냐에 따라 나중에 이 대통령 재판도 영향받을 수밖엔 없었다. 그러나 항소 포기는 공정했어야 할 사법 절차를 일거에 무력화시켰다.


정권의 모든 몰락은 ‘공정’이란 뇌관을 건드리면서 시작됐다. 누구든 용서 않던 우리 국민이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아들 수사의 공정성으로 무너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비선과 공조직 간의 공정을 구분 못 해 탄핵을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가장 고른 조건이어야 할 입시의 공정을 건드린 최측근을 감싸다 정권을 빼앗겼다. 공정을 가장 중시한 이대남에 의해 탄생한 윤석열 대통령은 아내 수사만은 원천봉쇄하려다 그 공정의 족쇄에 걸려 자멸했다.

심리학자들은 누군가의 불공정으로 상처받은 이들은 그 누군가의 다음 행위 역시 위협과 음모로 느껴 잘 믿지 않게 된다고 한다. 공정이란 뇌관을 한번 건드린 정권의 회생이 무척이나 어려워질 이유다. 특히 ‘공정의 나라’ 우리 대한민국에선 말이다.

최훈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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