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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백해룡과 '씁쓸한 결별' [장세정의 시시각각]

중앙일보 장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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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인천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은 2023년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필로폰 74kg 밀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관세청 산하 인천공항 세관 직원들이 연루됐다는 말레이시아 출신 마약 운반책들의 진술을 경찰이 확보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던 백해룡 경정은 그해 10월 언론 브리핑을 앞두고 두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이 '보도자료에서 관세청을 빼라'는 외압을 행사했고, 용산경찰서장이 "용산(윤석렬 대통령실)이 사건을 알고 있다"며 브리핑 연기를 지시했다는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백해룡 경정과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마약 밀수 외압 의혹 수사 과정에서 한 때 공조하는 듯했으나 최근 검경 합동수사단의 중간수사 발표 이후 결별 수순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앙포토 연합뉴스]

백해룡 경정과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마약 밀수 외압 의혹 수사 과정에서 한 때 공조하는 듯했으나 최근 검경 합동수사단의 중간수사 발표 이후 결별 수순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앙포토 연합뉴스]


지난해 12·3 계엄이 터졌고, 대통령 탄핵·파면으로 정권이 교체되자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이 검경 합동수사단을 맡았다. 9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입법 청문회에 출석한 백 경정은 "대통령실이 내란 자금 조달을 위해 마약 독점 사업을 했다"고 불쑥 의혹을 추가했다. 조폭 영화 같은 폭로를 공직자가 남발해도 되는지 싶었다. 그런데 10월 이재명 대통령은 그런 백 경정을 동부지검에 파견해 수사에 참여하도록 지시해 이해충돌 논란을 일으켰다.



"마약밀수에 세관 연루" 의혹 제기

재수사 동부지검 "사실 무근" 판단

혼란 키운 백 경정, 이젠 성찰하길


결국 지난 9일 서울동부지검 검경 합수단은 2년 넘게 나라를 혼란스럽게 했던 세관 직원들의 마약 밀수 연루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무혐의 처분했다. 합수단은 세관 직원들이 필로폰 밀수를 도운 사실이 없는데도, 백 경정이 말레이시아 출신 운반책들의 허위 진술에 의존해 세관 직원 연루 의혹을 제기했다고 판단했다. 경찰 지휘부 수사 외압 주장에 대해서도 합수단은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실과 김건희 일가의 마약 밀수 의혹과 검찰 수사 무마·은폐 의혹은 계속 수사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월 백해룡 경정을 서울동부지검에 설치된 검경 합동수사단에 파견하도록 지시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월 백해룡 경정을 서울동부지검에 설치된 검경 합동수사단에 파견하도록 지시했다. [연합뉴스]


이쯤 되면 백 경정의 판정패 수준이다. 하지만 백 경정은 반발하고 있다. 밀수범 3명 모두 진술을 바꿨는데도 백 경정은 "밀수범들의 진술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경찰이 속아 넘어갔다고 보는 건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반박했다. "수사 기초도 모른다"며 임 지검장에게 화살을 돌리더니 "임 지검장은 검찰 게이트와 한편"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검찰이 왜곡된 정보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국민을 속이려 든다"며 공개 수사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7월 부장검사에서 차장검사를 건너뛰고 검사장으로 발탁된 임 지검장은 취임 직후 백 경정을 면담했고, 당시 백 경정은 "(윤석열 정권에서) 같이 고난을 겪었던 부분이 있으니 서로 눈빛만 봐도 위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며 진한 동질감을 과시했다. 좌파 진영에 팬덤까지 생겼던 두 사람은 한동안 단일대오를 보여줬지만 합수단 발표를 계기로 씁쓸하게 결별한 모양새다.


공익 제보자로 평가돼 2023년 12월에 호루라기상을 받은 박정훈 해병대 대령, 임은정 검사(2022년 수상), 백해룡 경정(2024년 수상). [임은정 검사 페이스북 갈무리]

공익 제보자로 평가돼 2023년 12월에 호루라기상을 받은 박정훈 해병대 대령, 임은정 검사(2022년 수상), 백해룡 경정(2024년 수상). [임은정 검사 페이스북 갈무리]


백 경정이 윤석열 정권 시절 의혹을 제기할 때만 하더라도 채 상병 사망사건을 맡았던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처럼 소신파 공직자로 평가하는 여론이 있었다. 하지만 합수단 발표를 계기로 백 경정은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었다. "세관 직원들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 여러모로 피해가 크다"는 임 지검장의 돌직구처럼 백 경정이 일으킨 분란으로 경찰 수사 능력 등에 대한 국민 불신을 키웠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합수단이 명쾌하게 발표했는데도 이 대통령은 아직 추가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합수단 수사 결과를 불신하지 않는다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사회적 비용을 줄이도록 더 늦기 전에 분명히 가르마를 타줄 때가 됐다. 누구보다 백 경정은 이제 솔직해져야 한다. 1998년 3월 순경 공채로 공직에 입문할 때의 초심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억울한 누명을 쓴 세관 직원들과 그 가족이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무거운 책임을 져도 부족할 것이다. 경찰이 장악한 수사권이 때론 흉기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차를 운전할 때 액셀을 밟으면 통쾌하지만, 위험 구간에서는 브레이크를 밟는 자제력도 필요하다. 지금은 조용히 입을 닫고 걸음을 멈춘 채 어지럽게 달려온 발자국을 돌아볼 때다.

인천세관 마약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한 백해룡 경정이 지난 2024년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인천세관 마약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한 백해룡 경정이 지난 2024년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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