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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AI와 인문학의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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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학기 말이 되자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이 줄을 잇는다. 자신이 썼다고 주장하는 과제물이 생성형AI의 텍스트로 드러나 0점을 받았으니 절박할 만도 하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그러던 중 뉴요커에 실린 D 그레이엄 버넷의 글, ‘Will the Humanities Survive AI?(인문학이 과연 AI 시대를 견뎌낼까?)’를 읽었다. 역사학자답게 그는 AI를 지식 획득 방식의 대격변으로 진단하며 그 파괴력을 두려움보다 호기심으로 받아들인다. 그가 서술하는, AI를 이용하는 철학적 사유 실험이나 심층적 대화 과제들이 모든 인문학 교실에 적합하진 않다. 그래도 학생들의 언어와 검색, 독서와 음악, 채팅과 사유 방식에까지 파고든 AI를 대학 교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해야 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모순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시사 주간지 타임은 AI 시대를 이끈 주요 인물들을 ‘Architects of AI(AI의 설계자들)’라고 명명하며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고 잡지 표지에 내세웠다. 이 표지는 1932년 뉴욕 고층 건설 노동자들이 철골 위에서 점심을 먹던 사진을 재현한 것이다. 도시를 세운 이름 없는 노동자들 자리에 테크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을 끼워넣은 이 표지는 놀라울 정도로 천박한 시대 감각을 노출시켰다. 1938년에 히틀러를 올해의 인물로 올렸던 전력이 떠오를 정도다.

지배층은 언제나 노동자의 이미지를 훔쳐 자기 서사를 세웠다. 로마 황제들은 잿빛 갑옷을 두르고 전장에 흩뿌려진 무명의 피와 땀을 미학적 배경으로 삼았다. 중세 군주들은 목동의 지팡이를 손에 쥔 채 백성의 목자를 자처했다. 노동은 통치를 윤리로 포장하는 장식 역할을 해 왔다. AI가 바꾼 현실을 외면한 채 인문학의 당위만 주장한다면 인문학이 설 공간은 그만큼 없어지는 셈이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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