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경 대령 |
박진경 대령이 4.3 폭도 진압을 명받고 제주에 도착한 것은 1948년 5월 6일이었다. 그가 남로당 프락치인 부하 장교들에 의해 취침 중 살해된 것은 같은 해 6월18일 새벽. 그는 정확히 43일간 제주에서 대유격작전을 수행하다 죽었다.
남로당 중앙 정치 지도원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 박진경 대령 숙청을 결정한 것은 1948년 5월 10일이었다. 제주읍 모처에서 열린 회의에는 정치 지도원 올구, 남로당 제주도당 군책 김달삼, 국방경비대 현직 소령으로 남로당 프락치였던 오일균과 수하 몇 명의 위관 장교들이 참여한 것으로 남로당 내부 문건 ‘인민유격대투쟁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5월 10일이라면 박 대령이 부임한 지 4일 후로 아직 본격 진압은 시작되기도 전이었는데 그 시점에 남로당은 작전책임자 제거를 결정한 것이다.
4.3을 ‘학살’의 관점에서 서술한 한 책자(‘4.3은 말한다’)는 박진경 대령 재임 간 경비대에 의해 사살된 사망자 수를 25명으로 기록했다. 25명은 교전 과정에서 사살된 인민유격대원들이다. 포로나 무고한 주민을 학살했다는 증거는 아무데도 없다. 경비대가 반란군을 사살하면 학살인가.
2000년대 초반 제주4.3 진상조사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에는 4.3기간 희생자수가 10701명(유족 신고 기준)으로 집계돼 있다. 이때 희생자가 유격대인지, 군경인지는 구분되지 않는다. 박 대령이 온전히 작전을 수행한 1948년 5월의 희생자 신고 건수는 289명, 박 대령이 18일간 살아 있었던 그해 6월 신고 건수는 157명이다. 희생자 신고가 1000명 단위로 급증하는 것은 계엄령이 내려진 11월 이후로 11월 신고자 수는 2205명이다.
박 대령은 훌륭한 군인이었지만 너무 일찍 남로당이 제거하는 바람에 4.3 진압에 큰 공을 세울 시간 자체가 없었다. 그런 그가 ‘4.3 학살’의 주역중 한명으로 부각된 것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4.3 재평가 작업 과정에서 왜곡·날조된 주장들이 쌓이고 쌓인 결과다.
좌파 진영에서 제기한 혐의에는 박 대령이 부하들에게 ‘조선 민족 전체를 위해서는 30만 도민을 희생시켜도 좋다’고 말했다는 의혹도 포함된다. 이는 박진경을 암살한 프락치 군인들이 재판 과정에서 주장한 것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한 것이다. 그들 중 일부가 박 대령을 암살한 동기로 ‘무모한 토벌 작전’을 들면서 그런 주장을 했다. 그러나 피고인들의 증언이 일관되지 않을뿐더러 박 대령이 부임하자마자 남로당 차원에서 제거를 결정해 놓고 ‘무모한 토벌’을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말이 안 된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지역 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된 박 대령 관련 의혹에는 주민 6000명을 체포하고 청년들을 고문하고 어린아이를 죽였다는 주장이 들어간다. 대부분은 구체성이 없는 ‘카더라’식 전언을 맥락 없이 편집해 박 대령 재임중 발생한 일로 둔갑시키거나 날조하는 일이 거듭돼 왔다.
이중 그나마 구체적인 6000명 체포 주장도 왜곡·과장이다. 박 대령 재임간 군경에 의해 체포된 주민은 3000명으로 이들 대부분은 군.경.미군 합동 심문팀에 의해 조사받고 바로 석방되었다. 이들 주민 다수는 5.10 선거를 보이콧하려는 남로당 공작에 의해 얼떨결에 입산한 주민들이었다. 체포는 폭도들로부터 일반 주민을 분리하는 필수 절차였다.
새삼 박 대령 이야기를 하는 것은 최근 그의 국가유공자 지정을 놓고 또 한 번 소동이 일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4일 자로 국가보훈부는 박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했다. 그 보도를 보고 ‘이 정부가 할 일은 하는구나’ 생각한 것은 잠시. 지정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에서 “국가유공자 자격을 즉각 취소하라”는 성명이 나왔고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이 제주 현지로 내려가 사과를 했다.
장관의 변명은 군색하기 이를 데 없다. 박 대령은 을지무공 수훈자(이승만 정부 때 수여됐다)이기 때문에 현행법상 국가유공자로 지정하지 않을 근거가 없어 신청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며 어쨌든 깊이 살펴보지 못해 죄송하다는 취지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서훈 취소가 가능한 상훈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로 발의했다. 박 대령 훈장을 취소해 국가유공자 지정을 없던 일로 하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4.3의 성격과 책임을 놓고 건국 이후 지금까지 논쟁이 계속됐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논쟁은 사실을 기반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부임 43일만에 암살된 박진경 대령을 학살의 주역으로 악마화하는 것은 논쟁이 아니라 날조에 해당한다.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사악한 일이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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