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불법계엄을 선포하고 1주일여가 흐른 지난해 12월11일, 경찰은 조직의 ‘투톱’인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을 제 손으로 체포했다. 경찰은 계엄 당시 내려온 ‘국회 봉쇄’ 지시를 비판 없이 따른 뒤 ‘내란 동조’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조직 전체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자 경찰 내부에서는 ‘반등할 기회는 내란 수사뿐’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경찰이 스스로 수뇌부를 체포하면서 여론은 일부 반전했다.
국군의 날인 2024년 10월1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6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사열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
검찰에 선수 뺏긴 경찰
일요일이던 지난해 12월8일 새벽 1시30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에 자진 출석했다. 이 소식을 들은 우종수 당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등 경찰 지휘부는 고민에 빠졌다.
앞서 경찰은 지난해 12월6일 국수본 안보수사단을 중심으로 120여명 규모의 내란 혐의 전담팀을 꾸린 터였다. 경찰은 검찰에게는 없는 내란죄 수사권이 있었다. 또 김 전 장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이미 발부받았다. 그런데 김 전 장관은 검찰 간부와 통화한 뒤 경찰을 ‘패싱’하고 검찰에 자진출석했다. 경찰은 모든 준비를 다 해놓고 검찰에 핵심 피의자들을 뺏긴 셈이었다.
경찰은 ‘합동수사본부를 꾸리자’는 검찰의 제안을 거절하고 별도로 전담수사팀을 편성했다. 검찰 출신 대통령의 내란 혐의를 수사하면서 검찰 수사본부에 합류하면 논란이 생길 수 있었다. 내란 혐의에 대한 직접 수사권도 경찰에만 있으니 검찰의 지휘를 받아 수사할 이유가 없었다.
경찰은 다음날인 지난해 12월9일 개시하려던 김 전 장관 집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루 앞당겨 8일 오전에 시작했다. 김 전 장관의 휴대폰과 PC·노트북 등을 압수했다. 이어 박창환 국수본 중대범죄수사과장과 임경우 서울경찰청 수사부장, 이충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장 등 30명을 추가로 투입해 특별수사단을 출범시켰다. 검찰에 선수를 빼앗기자 신속하게 조직 규모를 키웠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이 2024년 12월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수본에서 12·3 계엄 사태 수사 상황 관련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첫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
드러난 거짓말
검·경의 다음 표적은 경찰 ‘투톱’이었다. ‘국회 봉쇄’를 지시한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내란 수사의 핵심 피의자였다. 검찰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경찰은 내란 수사에 필수적인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하면서 ‘경찰은 누구나 수사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경찰은 현직 지휘부인 이들을 조사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방안은 없었다.
12월9일 특수단은 첫 언론 브리핑을 열었다. 우 본부장은 ‘대통령도 수사할 수 있냐’는 질문에 “수사에 인적·물적 제한이 없다”고 밝혔다. 우 본부장은 “국수본이 내란죄의 수사 주체”라고도 말했다.
☞ [속보]경찰 특수단, ‘대통령 수사대상 되나’ 질문에 “인적·물적 제한 없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412091024001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10일 오후 서울청 광역수사단과 국수본 중대범죄수사과에 각각 출석했다. 피고발인 자격이었다. 조사 초반부터 예상치 못한 진술이 나왔다. 조 청장이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김 전 장관, 김 서울경찰청장 등과 윤 전 대통령을 만났다는 내용이었다. 그간 조 청장이 언론에 밝힌 입장과는 배치됐다. 조사 전까지 조 청장은 ‘용산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다가 TV를 보고 계엄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해왔다. 계엄 직후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나 국회에서도 같은 발언을 했다.
☞ [단독]경찰청장, 비상계엄 발표 4시간 전부터 대기…“용산서 연락받아”
https://www.khan.co.kr/article/202412040810001
긴급체포냐, 추가 수사냐
조 청장의 거짓말이 드러나자 특수단 지휘부는 회의를 열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조 청장을 바로 긴급체포해야 한다는 의견과 일단 귀가시킨 뒤 재조사를 통해 혐의를 구체화해 체포하자는 의견이 맞섰다.
추가 조사를 더 해야 한다는 이들은 안가 회동에 대한 진술만으로 내란죄 입증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다고 했다. 섣불리 체포했다가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오히려 수사에 차질이 생긴다는 우려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반면 특수단의 핵심인 안보수사단은 긴급체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증거 인멸 우려가 있고, 조 청장을 우선 귀가시킬 경우 바로 검찰에 체포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조 청장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던 시점인 10일 늦은 밤, 법원이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검찰의 내란 혐의 수사권도 인정해줬다. ‘경찰공무원의 범죄’는 직접 수사 대상이라는 이유였다. 검찰이 경찰 수뇌부를 수사할 법적 근거를 확보했으니 경찰 지휘부의 마음은 더 급해졌다. 조 청장이 바로 검찰의 다음 수사 대상이 되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의견이 충돌하던 이들 모두 자신이 속한 경찰이란 조직의 수장을 직접 체포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의견은 쉽게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결국 우 본부장이 체포 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조 청장과 김 서울청장은 11일 새벽 3시44분쯤 체포돼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으로 이동했다.
5차례 비화폰 통화 진술 확보
긴급 체포 이후 특수단의 수사 속도는 빨라졌다. 국회의원을 체포하라는 윤 전 대통령의 지시 등 구체적 범죄 행위를 포착했다. 조 청장 체포 직후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출석요구서 작성과 불응 시 신청할 체포영장 초안도 미리 마련했다. 특수단이 실제로 직접 윤 전 대통령 체포에 나설 것도 검토했다는 뜻이다.
조 청장 체포 이후에는 구속이란 과제가 남았다. 이충섭 금수대장이 직접 조 청장을 조사했다. 조 청장을 설득해 윤 전 대통령과 5차례 비화폰으로 통화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비화폰 통화 기록은 조 청장 구속의 결정타였다. 또 윤 전 대통령 체포영장에서 범죄사실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조 청장 구속 영장 청구와 함께 윤 전 대통령 체포 검토를 시작했다.
2024년 12월11일 새벽 3시44분쯤 조지호 경찰청장을 태운 경찰 호송 차량이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청사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전현진 기자 |
검찰은 막혔다, 우회로 공수처
근거는 확보됐지만 문제는 남았다. 영장을 신청할 때 경쟁 관계였던 검찰과의 협조가 원활하지 않을 수 있었다. 검찰은 이미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반려하고 자신들이 군검찰을 통해 직접 강제수사를 벌이기도 했다.
특수단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통해 활로를 찾기로 했다. 이 금수대장은 12월9일부터 공수처 실무자와 접촉하고 있었다. 12월11일 경찰 특수단은 공수처·국방부 조사본부와 협의해 검찰을 제외한 공조수사본부를 꾸리기로 했다. 공조본을 꾸린 이후 특수단은 김 전 장관의 ‘비화폰’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고, 조 청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신청했다.
‘12·3 비상계엄’ 기획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2024년 12월 24일 서울 은평구 서울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
롯데리아 회동까지
이후 특수단은 비상계엄 당시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들에 대한 조사를 벌이는 한편, 정보사령부가 비상계엄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특수단은 김 전 장관이 검찰에 자진 출석한 이후 벌인 압수수색에서 포착한 단서로 수사를 시작해 전·현직 정보사령관 등이 오랜 시간 비상계엄을 기획해왔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른바 ‘롯데리아 회동’으로 관심을 모은 정보사 사조직인 ‘수사2단’의 실체와, 정치인을 체포하고 북한의 공격을 유도하는 등 비상계엄의 전모가 담긴 ‘노상원 수첩’도 확보했다. 특수단은 지난해 12월15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내란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특수단은 이후 윤 전 대통령에 대한 1~2차 체포영장 집행, 계엄 국무회의 CC(폐쇄회로)TV 확보 등 성과를 남기고 지난 6월 출범한 내란 특검에 사건을 넘겼다.
한 특수단 간부는 “6개월 이상 이어진 마라톤 같았던 시간이었는데 경찰의 수사력도 몇 단계 성장한 것 같다”며 “경찰이 그동안 크고 작은 전투를 수없이 치렀지만 ‘2차대전’을 치를 경험이 많지 않았는데, 내란 혐의라는 큰 전쟁을 겪으면서도 검찰에 밀리지 않고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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