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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1위' 아이슬란드서 일어난 일… 여성이 파업하니 나라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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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숙영의 시선]
아이슬란드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집회

편집자주

한국일보 기자들이 직접 여러 사회 문제와 주변의 이야기를 젠더적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젠더, 공간, 권력' 등을 쓴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의 글도 기고로 함께합니다.


2023년 10월 24일(현지시간)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아이슬란드 전역에서 모인 여성들이 24시간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양성 평등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한 곳인 아이슬란드에서 불평등한 임금과 성차별적 폭력 종식 촉구를 위한 파업이 벌어졌다. 레이캬비크=AP 뉴시스

2023년 10월 24일(현지시간)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아이슬란드 전역에서 모인 여성들이 24시간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양성 평등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한 곳인 아이슬란드에서 불평등한 임금과 성차별적 폭력 종식 촉구를 위한 파업이 벌어졌다. 레이캬비크=AP 뉴시스


최근 '아이슬란드가 멈추던 날'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다시 보았다. 지난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대구여성영화제 등에서 상영된 적 있는 이 영화는 1975년 10월 24일 북유럽에 위치한 섬나라 아이슬란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세밀하게 추적한다.

아이슬란드에서 그들이 멈추자, 사회도 멈췄다


그 가을날 아침, 아이슬란드 여성의 90%가 성별 임금 격차에 항의하며 가정과 직장에서 나와 광장에 구름처럼 모여 '휴일(day-off)' 시위를 벌였다. 그들이 하던 일을 멈추자 아이슬란드 전체가 멈췄고, 이후 아이슬란드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늘날 아이슬란드는 '성평등 천국' '성평등 선도 국가'로 불리며 전 세계에서 '여성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됐다. 세계경제포럼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성 격차 지수에서 아이슬란드는 올해도 1점 만점에 0.926점을 기록하며 16년 연속 성평등 1위 국가임을 과시했다. 50년 전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집 안팎에서 수행하던 유·무급의 모든 노동을 거부함으로써, 오늘날 아이슬란드를 정치, 경제, 교육 및 건강 등 4개 분야에 걸쳐 성별 격차가 가장 작은 나라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들이 멈추자, 그들이 하던 수많은 일이 뭐였는지 비로소 보였다. 요리, 육아, 간병, 세탁 등을 비롯해 '여성의 일'로만 알려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일들이 한 나라의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마침내 모두의 눈에 선명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 사회였던 아이슬란드에서 여성들은 하루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노동 없이는 아이슬란드 사회도 존재할 수 없음을 명명백백히 보여줬다.

'한국이 멈추던 날'을 향해 상상의 나래를



돌봄노동 종사자들이 지난해 6월 2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최저임금 업종별 차별 적용 반대 및 대폭 인상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돌봄노동 종사자들이 지난해 6월 2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최저임금 업종별 차별 적용 반대 및 대폭 인상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더욱 놀라운 건 성평등 1위인 아이슬란드에서 2년 전인 2023년 10월 24일에도 '진정한 성평등은 아직 요원하다'는 인식하에 여성들의 휴일 시위가 열렸다는 것이다. 여성인 카트란 야콥스도티르 총리도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과의 연대의 의미로 같은 날 집무실을 닫고 내각 회의를 취소했다.

13%의 성별 임금 격차도 지나치게 크다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실현을 위해 총리까지도 시위에 동참하는 아이슬란드를 보고 있자니, 그 격차가 30%를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한 수준임에도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던 한국 전직 대통령의 안이한 인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졌지만 노동 시장에서의 성 불평등이 지속돼 성별 임금 격차가 좀처럼 줄지 않는 대표적인 나라다. 주요 원인으로는 돌봄이 여성의 일로만 인식되고 남성은 돌봄의 책임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남성이 돌봄을 함께 분담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드문 와중에 '필리핀 이모'라는 이름의 가사관리사 도입과 '베트남 간호사'라는 이름의 요양보호사 도입은 이뤄지는 흐름에서 볼 수 있듯, 우리는 '지구적 돌봄 채굴주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한국이 멈추던 날'이 아닐까? 여성이 일하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도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시화하는 한편으로, 남성으로 하여금 돌봄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저 멀리 앞서가고 있는 아이슬란드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연말이다.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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