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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이 정의로운 형사로…'시그널2' 어떻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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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조진웅과 '두 번째 시그널'

편집자주

김도훈 문화평론가가 요즘 대중문화의 '하입(Hype·과도한 열광이나 관심)' 현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분석합니다.


배우 조진웅. 한국일보 자료사진

배우 조진웅. 한국일보 자료사진


우디 앨런 영화를 봤다. 주말에 봤다. 첫 문장을 읽자마자 화를 내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우디 앨런은 몇 년 전 대중의 윤리적 심판대에 올랐다. 전 부인 배우 미아 패로는 그가 양딸 딜런 패로를 7세 시절 성추행했다고 주장했다. 우디 앨런은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은 오랜 조사 끝에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 결론 내렸다. 기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단은 무죄다. 정말 무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디 앨런 자신만이 알 것이다.

그럼에도 우디 앨런은 유죄다. 대중의 사랑으로 움직이는 예술가에게 법적 유무죄는 중요하지 않다. 소셜미디어 시대에는 더욱 중요하지 않다. 대중이 윤리적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더 중요해진 시대다. 우디 앨런에게는 다른 논란의 여지도 있다. 그는 1997년 미아 패로가 입양한 양딸인 한국계 순이 프레빈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당시 앨런과 패로는 사실혼 관계였다. 미국이 뒤집어졌다. 아내의 양딸과 몰래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디 앨런과 순이 프레빈은 여전히 부부다. 사랑이었을 것이다. 사랑만으로 용서받는 일은 현실에서는 잘 벌어지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어쨌든 나는 주말에 우디 앨런 영화를 봤다. 뮤지컬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1996)다. 나는 이 영화의 한 장면을 매우 좋아한다. 뉴욕 민주당 지지 가족이 주인공이다. 유독 아들만 열정적인 공화당 지지자다. 마지막에 이유가 밝혀진다. 아들은 뇌종양을 앓고 있었다. 수술로 종양을 제거하자 아들은 곧바로 민주당 지지자가 된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두뇌에 문제가 있는 것들이라는 정치적 유머다. 나는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문제가 벌어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디 앨런이 소아성애자 성추행범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다. 영화에 대한 사랑과 예술가에 대한 의심이 격렬하게 충돌한다.

2023년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에 참석한 우디 앨런(왼쪽) 감독과 순이 프레빈. 순이 프레빈은 배우 미아 패로가 앨런과 교제하기 전 당시 남편이었던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과 입양한 딸이다. 앨런과 패로는 1980년부터 12년간 사실혼 관계에 있었고, 앨런과 순이 프레빈은 1997년 결혼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2023년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에 참석한 우디 앨런(왼쪽) 감독과 순이 프레빈. 순이 프레빈은 배우 미아 패로가 앨런과 교제하기 전 당시 남편이었던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과 입양한 딸이다. 앨런과 패로는 1980년부터 12년간 사실혼 관계에 있었고, 앨런과 순이 프레빈은 1997년 결혼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조진웅이 은퇴했다. 은퇴가 끝은 아니다. 여론은 찬반으로 홍해처럼 갈라졌다. 조진웅은 지난 몇 년간 진보의 아이콘이었다. 광복 80주년 경축식에서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낭독했다. 홍범도 장군 유해 국내 봉환 특사로도 활동했다. 정의를 연기하는 정의의 아이콘이었다. 아이콘은 무너졌다. 무너진 아이콘을 두고 사람들은 싸우기 시작했다. 아니다. 나는 소년범 과거를 캐내는 것이 법적 윤리적으로 온당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다. 그건 지금 이 시점에서는 딱히 중요하지도 않다. 과거는 밝혀졌다. 사람들은 이미 윤리적 판단을 내렸다. 조진웅은 은퇴했다. 끝났다.

끝나지 않았다. 조진웅은 자신을 스타로 만든 tvN 드라마 ‘시그널’ 후속작인 ‘두 번째 시그널’을 이미 다 촬영했다. 후반작업도 마쳤다. 제작사는 “여러 가능성을 놓고 논의 중”이라고 했다. 난감할 것이다. 조진웅은 드라마의 핵심 주인공이다. 정의로운 형사 역할이다. 나는 tvN과 CJ ENM이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다. 알아서 결정할 일이다. 내가 궁금한 건 독자 여러분의 선택이다. ‘두 번째 시그널’을 보고 싶으신가? 싫으신가? 혹시 방영한다면 몰래 보실 생각인가? 몰래 보신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보고 싶은 분들은 또 어떤 기분에 사로잡힐까? 그를 진보 아이콘으로 아껴온 분들도 그저 기쁜 마음으로만 보는 게 가능할까? 예술은 예술이니 참여한 사람의 윤리적 흠결은 상관이 없을까?

2018년 당시의 로만 폴란스키 감독.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의혹을 받으면서도 2023년까지 꾸준히 영화를 만들었고 미국과 프랑스 등 주요 시상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AP 연합뉴스

2018년 당시의 로만 폴란스키 감독.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의혹을 받으면서도 2023년까지 꾸준히 영화를 만들었고 미국과 프랑스 등 주요 시상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AP 연합뉴스


그것이 바로 내가 우디 앨런 영화를 보며 느끼는 혼돈이다. 우디 앨런만 혼돈인 것은 아니다. 나는 호러영화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는 ‘악마의 씨’(1968)다. 오컬트 영화 붐을 선도하며 ‘엑소시스트’(1973), ‘오멘’(1976) 제작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걸작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미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짐작하고 계실 것이다. ‘악마의 씨’ 감독은 로만 폴란스키다. 그는 1977년 한 파티에서 13세 여자아이를 술과 마약을 복용하게 한 뒤 성폭행했다. 재판받던 중 징역 50년이 선고될 것이 분명해지자 프랑스로 도피했다. 이후에도 그는 유럽에서 활동하며 지속적으로 할리우드 영화를 찍어왔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피아니스트’(2002)로는 오스카 감독상도 받았다.


많은 독자 여러분은 ‘피아니스트’를 보며 감동을 받아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감동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는 영화다. 로만 폴란스키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난 지금은 어떤가? ‘피아니스트’는 여전히 감동적인가? 아니면 이 글을 읽는 동안 감동이 송두리째 휘발하고 말았는가? 이 글은 참 질문이 많다. 정답이 없는 글이라 그렇다. 모든 것은 여전히 질문이다. 예술과 예술가는 분리 가능한가? 역사는 존경할 수 없는 예술가의 압도적인 예술로 넘친다. 카라바조는 살인자였다. 바그너는 반유대주의자였다. 코코 샤넬은 나치 협력자였다. 윤리는 어렵다. 윤리에는 언제나 모호한 중간 지대가 존재한다.

나는 우디 앨런과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를 보는 것이 영원히 불편할 것이다. 동시에, 우디 앨런과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들은 영원히 영화사의 걸작으로 남을 것이다.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1974)와 우디 앨런의 ‘애니 홀’(1977)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영화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미 존재하는 건 지워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선택이다. 우리는 각자 불편함을 감당하는 방식으로 예술을 소비하거나 거부할 자유를 갖는다. 자유라는 건 정말이지 어렵다. 그러니 마지막 질문이다. 여러분은 불편함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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