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과 검열’, ‘황우석 백서’ 호평
허술한 마무리 치고 들어온 불의
과거 실패 되짚어 미래 모색 필요
최근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 공간에서 호평을 받은 기획과 연재물 2개는 모두 과거를 되돌아보는 이야기다. 과거의 실패에서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모색하자는 메시지다.
먼저 12∙3 불법 비상계엄 1년을 맞아 준비된 ‘계엄과 검열’ 기획은 ‘46년 전 내란의 밤 기사 배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된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과 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 전두환 군부 집권 후 사회 실태 등 검열 때문에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던 기사 352개를 분석하고 이 가운데 몇 개를 되살려 옛 한국일보 제호 아래 싣기도 했다.
이번에 확인된 기사 4편에 담긴 '내란의 밤'은 긴박했다. 영화 ‘서울의 봄’이나 각종 드라마, 논픽션 등을 통해 익히 알려진 12∙12의 여러 장면은 당시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목숨을 건 현장 취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한남동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공관 인근에서 울려 퍼진 쿠데타 총성과 나중에 반란 진압을 시도했던 필동 수도경비사령부 앞 무장 군인 등을 취재하고, 경복궁 중앙청으로 이동하던 탱크 소리 속에서 상황을 기록했던 한국일보판 역사의 증언이 생생했다.
허술한 마무리 치고 들어온 불의
과거 실패 되짚어 미래 모색 필요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2021년 8월 9일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기일에 출석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전씨는 같은 해 11월 23일 광주 5.18 민주화운동 등에 사죄의 말을 남기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광주=서재훈 기자 |
최근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 공간에서 호평을 받은 기획과 연재물 2개는 모두 과거를 되돌아보는 이야기다. 과거의 실패에서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모색하자는 메시지다.
먼저 12∙3 불법 비상계엄 1년을 맞아 준비된 ‘계엄과 검열’ 기획은 ‘46년 전 내란의 밤 기사 배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된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과 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 전두환 군부 집권 후 사회 실태 등 검열 때문에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던 기사 352개를 분석하고 이 가운데 몇 개를 되살려 옛 한국일보 제호 아래 싣기도 했다.
이번에 확인된 기사 4편에 담긴 '내란의 밤'은 긴박했다. 영화 ‘서울의 봄’이나 각종 드라마, 논픽션 등을 통해 익히 알려진 12∙12의 여러 장면은 당시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목숨을 건 현장 취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한남동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공관 인근에서 울려 퍼진 쿠데타 총성과 나중에 반란 진압을 시도했던 필동 수도경비사령부 앞 무장 군인 등을 취재하고, 경복궁 중앙청으로 이동하던 탱크 소리 속에서 상황을 기록했던 한국일보판 역사의 증언이 생생했다.
그러나 신군부의 언론 검열이 시작됐고, 군인들의 ‘가(可)’ 도장을 받아야만 신문에 기사를 실을 수 있게 됐다. 그 와중에 부끄럽게도 사회부 현장취재팀장과 편집국장은 신군부의 품에 안겼고, 고립된 광주는 ‘총성과 곡성’ 가득한 대유혈 비극의 현장이 됐다.
이 기획에는 ‘그날, 계엄이 성공했다면? : 독재권력이 장악한 45년 전 언론’이라는 영상도 포함됐다. “지난해 12∙3 계엄 때 포고령을 보면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 통제를 받는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감정은 어땠는가.” 이런 질문에 “‘사십 몇 년 만에 이게 웬 날벼락이냐’는 생각이 들었고, 또 검열을 받으러 가는 그런 불행한 시대가 시작될 거라고 생각하고 몇몇 사람들과 통화해서 울분을 터뜨렸다”라고 1986년 보도지침을 폭로했던 김주언 전 한국일보 기자는 토로했다.
2005년 황우석 서울대 수의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 전모를 다룬 ‘황우석 백서: 왜 우리는 선동에 무력한가’도 당시 상황과 후과를 다룬다. 지난달 24일부터 한국일보닷컴에 연재되며 온라인 안팎에서 화제가 된 이 기획은 당시 청와대, 과학기술부, 서울대, YTN, 조선일보 등이 한통속이 돼 황우석을 옹호하고, 과학계의 검증 작업과 언론의 진실 보도를 방해했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끝나지 않은 사건의 그림자’가 자꾸 나타나 제보자와 진실 규명에 힘쓴 과학자를 20년째 괴롭히고 있는 현실을 탄식한다. 황우석을 퇴출시키는 것으로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사건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고, 그 틈을 치고 들어오려는 거짓과 불의의 노력은 성실했다”는 것이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학자 E.H.카의 거창한 해석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두 기획이 남긴 역사 속 교훈의 맥락은 유사하다. 바로 ‘승리했다고 방심하면 불의와 반칙은 언젠가 정의와 상식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점이다. 결국 제대로 단죄하지 않고, 바로잡지 못한 채 흐지부지 넘겼던 과거 모든 일은 현재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전두환 군사 반란 일당을 법정에 세우기만 했을 뿐 뿌리째 뽑아내지 못한 원죄가 윤석열의 내란 시도로 확인된 것처럼, 황우석 사태 20년 뒤에도 부정을 방조하는 조직 문화와 언론의 실패가 반복되는 것처럼.
그래서 다시 기록하고, 기억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의 허술했던 마무리가 지금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앞으로는 이런 오점을 남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정상원 온라인총괄부문장 ornot@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