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증시의 기술주들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 10일(현지 시간)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낮췄다는 소식에도 힘을 쓰지 못하고 쓰러졌다. 소프트웨어·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오라클의 자본지출이 예상보다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에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우려가 다시 한 번 커진 까닭이다. 월가 투자자들은 이제 미국뿐 아니라 중국 AI 기업에도 막대한 투자를 쏟고 나섰다. 미국 정부와 의회의 대(對)중국 견제 움직임에도 미중 AI 경쟁이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반영된 투자로 풀이된다. 이미 기업가치가 오를대로 오른 개별 미국 AI 기업들의 불확실성과 중국 회사들의 굴기 사이에서 투자자들도 당분간 주판알을 복잡하게 튀길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센터 자본지출 급증’ 오라클 충격에 기술주 줄줄이 하락
11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나스닥종합지수는 장 초반부터 하락세로 출발해 약세를 면치 못하고 0.26% 하락으로 마감했다. 전날 연준의 0.25%포인트 금리 인하와 미국 경제성장률 0.5%포인트 상향 소식도 주가를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날은 특히 엔비디아(-1.55%)를 비롯해 애플(-0.27%), 아마존(-0.65%), 구글 모회사 알파벳(-2.43%), 브로드컴(-1.60%), 팰런티어(-0.20%) 등 AI 관련주들이 줄줄이 약세를 보였다.
나스닥지수와 기술주에 타격을 준 것은 전날 장 마감 후 발표된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사 오라클의 2026 회계연도 2분기(9~11월) 실적이었다. 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시장 예상치를 소폭 밑돈 데다 자본지출 전망까지 상향 조정하면서 AI 투자의 수익성에 대한 불안 심리를 강하게 자극했다.
오라클은 2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증가한 161억 달러, 조정 영업이익은 10.5% 증가한 67억 달러를 각각 기록했다고 밝혔다. 월가의 관심이 가장 높았던 클라우드 인프라 매출은 68% 증가한 40억 8000만 달러를 거둬 시장 기대치에 못미쳤다. 클라우드 판매도 34% 증가한 79억 8000만 달러를 기록해 전망치를 밑돌았다. 수주 잔액은 1분기 말 4550억 달러에서 2분기 말 5230억 달러로 680억 달러 더 증가했다.
시장에 결정타를 날린 부분은 데이터센터 지출을 나타내는 자본지출이었다. 오라클은 2분기 자본지출이 약 120억 달러로 1분기 85억 달러보다 35억 달러나 급증했다고 공표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였던 37억 달러 많은 수준이었다. 나아가 더그 케링 오라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실적발표회에서 2026 회계연도 전체 자본지출 전망치를 약 500억 달러로 제시했다. 이 역시 기존 전망치보다 150억 달러나 많은 수치였다. 오라클은 그러면서 2026 회계연도 전체 매출 전망치는 지난 10월 제시했던 670억 달러를 그대로 뒀다. 실적은 그대로인데 자본지출 계획만 급격히 늘린 셈이다. 오라클은 지난 9월 180억 달러(약 26조 4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도 발행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오라클의 신용등급은 ‘BBB’로 투자 등급 최하단에 근접했다. 부도 위험을 반영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200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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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가 한때 ‘세계 최고 부자’ 됐던 오라클, 석달 만에 40% 급락
오라클의 계획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오라클은 지난 11일 정규장에서는 0.67% 올랐다가 실적 발표가 나온 뒤 시간외거래에서는 11.6% 급락했다. 또 12일에도 10.84% 폭락했다. 클레이 마고이르크 오라클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실적 발표 성명을 통해 “오라클은 고성능이면서 비용 효율적인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데 매우 뛰어나다”며 “우리는 자동화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에 더 많은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운영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케링 CFO도 같은 날 실적발표회에서 “자본지출 대다수는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장비에 쓰인다”며 “토지, 건물, 전력은 모두 임대를 통해 해결된다”고 설명했다. 또 “데이터센터와 전력 설비가 완공돼 인도되기 전까지는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는다”며 “신용등급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 주가는 올 9월 기록한 사상 최고가와 비교하면 40% 가까이 하락한 수치다. 오라클은 9월 9일 1분기 실적 때 수주잔고가 4450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9% 증가했다고 밝히면서 이튿날인 10일 35.95%나 치솟았다. 오라클 기준으로 1992년 이후 33년 만에 하루 최대 상승폭이었다.
당시 오라클의 수주잔고는 시장 예상치의 2배가량에 달했다. 오라클은 당시 클라우드 인프라 부문의 매출이 전년보다 77% 많은 180억 달러를 기록하고 4년 뒤에는 144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주가 폭등으로 오라클의 창업자인 래리 엘리슨 회장은 순자산이 3930억 달러로 불어 재산이 3850억 달러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제치고 세계 최고 부자로 등극하기도 했다. 하루 만에 순자산이 1000억 달러 이상 증가한 까닭이다.
오라클은 1977년 설립된 소프트웨어 회사로 글로벌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DBMS) 시장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는 정보기술(IT) 공룡이다. AI 생태계에서는 기업용 플랫폼·클라우드 시장에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과 경쟁 관계에 있다.
오라클발(發) 과잉 투자 우려에 국제 유가도 떨어졌다. 11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장 대비 0.86달러(1.47%) 내린 배럴당 57.60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는 지난 10월 20일 이후 2개월 만의 최저치다. 전날 연준의 금리 인하 결정에 반짝 반등했다가 하루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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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는 중국 AI주에도 ‘뭉칫돈’···미중 패권 경쟁 ‘보험’
미국 AI 관련주가 연일 불안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월가는 최근 중국 기업에도 큰 돈을 투자하고 있다. 미국이 AI 패권 경쟁에서 완승을 거둘 것이라는 확실한 보장이 없는 상태라 일종의 ‘보험’을 드는 것으로 해석된다.
10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투자자들은 상장지수펀드(ETF) 등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며 중국 기술 기업들의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중국에 본사를 둔 벤처캐피털 회사들도 현지 AI 투자를 위해 미국 달러 표시 펀드를 조달하고 있다. 또 몇 년 간 중국을 외면했던 미국 기금도 중국 기업 투자를 고려하기 시장했다. WSJ는 올 초 ‘딥시크’가 중국 AI 모델도 미국과 경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뒤부터 증시에서 주식을 매입하는 미국 투자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뉴욕과 홍콩 증시에 상장된 알리바바는 올 들어 10일까지 80% 이상 급등하며 4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같은 기간 텐센트·바이두는 50%, 캠브리콘은 120% 가까이 상승했다. 앞서 중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최근 내수 부진과 미중 갈등, 당국의 부동산 규제 등으로 2021년 이후 지난해까지 내리막을 걸은 바 있다. 그러다 올 들어서는 10월까지 중국 본토 증시에만 외국인 자금이 총 506억 달러(약 74조 원)나 유입돼 2021년 이후 최대 규모를 이뤘다.
금융 정보 업체 ETF닷컴에 따르면 최근 6개월 동안 중국 기술기업에 투자하는 대표 ETF 2곳에만 5조 원이 넘는 자금이 몰렸다. ‘크레인셰어즈 CSI 차이나 인터넷’에 20억 달러(약 2조 9460억 원), ‘인베스코 차이나 테크놀로지’에는 18억 달러(약 2조 6514억 원)가 각각 순유입됐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지난 7월 중국 기술주 ETF에 대한 자본 유입이 미국을 앞서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데이터 제공 업체 LSEG에 따르면 미국의 뱅가드그룹, 블랙록, 피델리티가 관리하는 대형 펀드들도 올해 알리바바의 홍콩 상장 주식량을 늘렸다. 심지어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투자회사 러퍼는 중국 기술 대기업들의 주가수익비율(PER)이 구글 등 미국 기업보다 낮다며 상승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러퍼의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알리바바가 차지하는 비중만 1.5%에 달한다.
헤지펀드 업체 아팔루사의 수장이자 억만장자 투자자인 데이비드 테퍼도 중국 기업에 대한 낙관론을 공개적으로 펼쳤다. 지난달 아팔루사에 따르면 전체 70억 달러 규모의 주식 투자분 가운데 알리바바는 16%를 차지해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다.
월가의 이 같은 투자 흐름은 엔비디아 반도체 수출 허용 등 대중국 AI 정책을 둘러싸고 씨름을 하는 미국 정치권과는 다소 결이 다른 움직임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달 8일 미국 AI 기술에 대한 자신감으로 엔비디아의 고사양 칩 ‘H200’에 대한 대중국 수출을 허용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의회는 안보 우려 등을 이유로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다. 중국 AI 기술 수준에 대한 평가가 정치권과 월가, 중국 내부 등에서 모두 제각각인 분위기다. 중국이 AI 자립에 어느 정도 속도를 내느냐에 따라 미국 기술주의 ‘거품론’도 당분간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기업 가운데에서도 AI 사업으로 미래에 확실히 수익을 낼 기업을 중심으로 투자 대상이 더 좁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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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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