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스무살 때 이미 한국에서 받을 수 있는 연기상을 대부분 받아냈다. 이후 몇 년이 흐른 뒤 그는 일본어 연기로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유례 없는 행보였다. 이런 배우에게 재능이 없다고 말하는 건 당연히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런데 이 화려한 이력을 가진 배우를 향해 재능 운운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심은경(31) 자신이다. 그는 영화 '여행과 나날'(12월10일 공개)을 선택한 이유로 이 작품 속 대사를 꼽았다. "전 재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인 각본가 '이'는 극중 자신이 극본을 쓴 영화를 본 뒤 이렇게 말한다. 심은경은 "나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이 많아서 그 대사에 확 꽂혔다"고 했다.
'여행과 나날'은 현재 일본영화 새 시대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연출가 중 한 명인 미야케 쇼 감독 신작이다. 일본 작가주의 만화가 츠게 요시하루의 단편 '해변의 서경'(1967) '혼야라동의 벤상'(1968)을 하나로 엮어 영화화한 이 작품은 '이'가 쓴 각본으로 만든 영화에 더해 작업이 잘 풀리지 않아 고민인 그가 산골 여관으로 여행을 갔다가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심은경이 연기한 인물이 바로 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각본가 '이'. 그는 '써니'(2011) '수상한 그녀'(2014) 등으로 보여준 캐릭터 강한 연기에서 정반대로 넘어와 정적이고 여백 많은 연기를 한다.
"이가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말하는 그 용기, 그 태도에 끌렸습니다. 전 제 부족함을 항상 숨기려 하고, 어떻게든 다른 무언가로 메꾸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당연히 이런 인물을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심은경은 미야케 감독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연기를 하겠다고 했다. 미야케 감독은 아무 것도 안 하는 심은경을 찍을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했단다. "일종의 직업병이죠. 카메라 앞에 서면 자꾸만 뭔가를 더하려고 해요. 안 하면 불안한 거죠. 이번엔 있는 그대로 존재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정말 아무 것도 안 한 건 아니었어요. 대사가 적은 영화이니까 움직임에 공을 들였죠.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의미를 두려고 했습니다."
심은경은 덜어내고 비우는 연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는 말한다. "나는 말에 갇혀 있다." 말에 짓눌려 있던 '이'는 말에서 벗어나 눈이 가득 쌓인 산속 여관에 이틀을 머문 뒤 다시 삶의 활기를 되찾은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심은경은 더하고 또 더하는 연기에서 빠져나와 최대한 덜어내는 연기를 한 뒤 자유를 느꼈다. "대사가 없기 때문에 제가 느끼는대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자유로웠어요.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게 존재한다는 것, 그게 중요했어요. 아마도 그게 진심이라는 것이겠지요."
심은경은 말로 표현돼야 하는 걸 좇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최고가 되고 싶었어요. 한국에서 제일 연기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그는 그때를 "오만했다"고 했다.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일본에서 활동도 영향을 줬다. "최고가 되는 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일본에서 '신문기자' '블루아워'를 찍을 땐 지금보다 일본어를 더 못했습니다. 쉽지 않았죠. 그런데 그렇게 일본어 연기를 하면서 연기라는 게 말이 다가 아니라는 걸 오히려 깨닫게 됐어요.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말을 넘어서는 진심을 연기에 담아내야 한다는 거죠." 심은경은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야케 감독은 심은경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게 있다. 그런 게 있다는 걸 우린 알고 있고, 굳이 그걸 설명할 필욘 없다."
심은경은 아직도 자기 재능을 의심한다. 다만 이제 그는 연기에 대한 재능보다 연기를 향한 사랑을 더 생각한다. "여전히 잘하고 싶습니다. 잘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지 골몰해요. 다만 재능보다 제가 연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마음에 관해 더 자주 생각합니다. 연기를 할 때, 무언가 좋은 게 나온 것 같을 때, 저도 모르게 웃고 있더라고요. 재능이 없을 수 있고, 천재가 아니어도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이걸 너무 좋아하고 그래서 계속하고 싶다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심은경은 "이제 나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웃었다. 어릴 땐 나름의 미래 계획을 세우곤 했다는 그는 이젠 그저 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살고 싶다고 했다.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다 보면 언젠가 제가 가고자 하는 길에 가깝게 닿아 있지 않을까, 생각하죠. 거창한 건 없어요. 일상이 중요한 거죠."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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