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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문장으로 읽는 책] 몰락하는 자

중앙일보 양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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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우리는 사실 피아노이길 원해. 인간이 아니라 피아노이길 원하지. (…) 이상적인 피아노 연주자는(글렌은 절대로 피아니스트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피아노이기를 원하는 자야. 나조차도 매일 잠에서 깨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 스타인웨이를 연주하는 인간이 아닌 스타인웨이가 되고 싶다고. 오로지 스타인웨이가 되고 싶다고 (…) 내가 스타인웨이가 돼서 글렌 굴드란 인간이 없어진다면 정말 이상적일 텐데, 스타인웨이가 되면 글렌 굴드는 불필요한 존재가 될 텐데, 라고 그는 말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 『몰락하는 자』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사진)가 실명 그대로 등장하는 소설이다. 물론 실제의 그와 똑같지는 않고 극적인 변형을 거쳤으나, 굴드가 세상을 뜬 지 1년 만에 출판돼 당시 괴팍한 천재 글렌 굴드의 신화화에 일조했다는 평을 받는다.

완벽한 예술, 천재적 재능에 대한 집착은 얼마나 사람을 파멸시키는가. 고전적 주제를 담은 예술가 소설이다. 굴드의 천재성에 좌절해 일찌감치 피아노를 포기했던 화자는, 굴드의 천재성을 질시하다 자살한 친구의 소식을 듣게 된다. 특별한 줄거리보다는 생각이 생각으로 꼬리를 물고, 첫 세 문장을 빼고 나면 끝까지 한차례 단락 구분 없이 숨 가쁘게 글이 이어지는 책이다. 냉정하고 시니컬한 문장이 폐부를 찌르며 모처럼 소설다운 소설 읽기의 쾌감을 선사한다.

인간이 아니라 차라리 피아노가 되고 싶다는 굴드의 광기와 강박을 작가는 ‘급진적 피아노주의’라고 표현했다. “그의 예술강박증, 그러니까 급진적 피아노주의 때문에 그가 얼마 못 가 파멸할 줄 알았다고.” “글렌은 과대망상증을 안고 나는 절망을 안고 말이야, 우리 셋 다 각자의 절망을 안고 말이야.”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나치에 협력한 조국 오스트리아를 끝까지 용서하지 못했고, 자신의 작품을 오스트리아에서 출간·공연할 수 없다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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