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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향기[이준식의 한시 한 수]〈346〉

동아일보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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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악(五岳)을 유람할 때 기꺼이 나를 접대해 주신 그대,

수많은 장서를 갖추고 있어 뭇 성을 다스리는 제왕 못지않으셨지요.

수만 인파 속에서 한 번 악수를 나누었을 뿐인데,

삼 년이 지나도록 내 옷소매엔 그 향기가 남아 있다오.

(遊山五岳東道主, 擁書百城南面王. 萬人叢中一握手, 使我衣袖三年香.)

-‘우정 송상봉께(투송우정상봉·投宋于庭翔鳳)’ 공자진(龔自珍·1792∼1841)

‘한 번 스친 악수로 삼 년 동안 옷소매에 향기가 남았노라.’ 선배 학자와의 짧은 조우가 시인의 인생에 남긴 흔적이 얼마나 깊었으면 이런 고백이 나왔을까. 시인은 송상봉의 환대를 오악의 장엄함에 비견한다. 실제로 두 사람이 중국의 명산을 함께 오른 것은 아니다. 송상봉의 고향 태호(太湖)와 동정산(洞庭山)이 예부터 ‘작은 오악’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웠고, 그곳에서 받은 대접을 산천의 품격을 빌려 표현한 것이다. 상대가 작은 고을의 현령에 지나지 않았지만, 시인에겐 지위보다 인품과 학문의 무게로 기억되는 사람이었다.

향기는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기 마련인데 시인에게 그 향기는 삼 년을 버티고 있다. 명망 있는 인물이 머문 자리에 사흘간 향내가 남았다는 고사를 ‘삼 년’으로 변용한 것이 우연은 아니다. 이 시가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지 꼭 삼 년 되던 해에 쓰였기 때문이다. 시간을 한껏 늘림으로써 시인은 그 만남이 일시적 호감이 아니라, 삶의 기준을 세우게 한 소중한 경험이었음을 드러낸다. 상대의 말투나 호의를 떠올리는 감상적 추억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품, 학문, 그 존재 자체에서 비롯된 조용한 울림에 대한 경탄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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