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3년 만에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가 어제 대통령실 업무보고에서 내놓은 첨단산업 지원 방안은 반도체 등에 한해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지분 요건을 현재 100%에서 50%로 낮추고 해당 증손회사에 금융 리스업도 허용하는 게 핵심이다. 인공지능(AI)시대를 맞아 수백조원의 투자가 필요한 첨단기업에 신규 자금 수혈의 길이 열린 셈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가 ‘대기업 특혜’라는 낡은 틀에서 벗어난 것 같아 다행스럽다.
금산분리 규제는 대기업이 금융회사를 사금고화하거나 산업 부실이 금융 분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1982년 도입됐다. 과거 재벌의 횡포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됐지만, 신산업 육성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에 큰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이번 규제 완화로 기업은 지주회사체제 아래에서 자금 부담이 절반으로 줄고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와 같은 외부 자금도 유치할 수 있다. 설비나 시설을 빌려 쓰는 금융 리스업까지 허용돼 초기 투자 부담을 확 덜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경제력 집중과 금융회사의 사금고 전락과 같은 부작용도 야기될 수 있는 만큼 단단한 안전장치도 갖춰야 할 것이다.
정부는 그제도 2047년까지 700조원 이상을 투입해 반도체 세계 2강으로 도약한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죽기 아니면 살기 상황이 됐다”며 국가 차원의 총력전을 선언했다. 하지만 전력 확보와 용수 공급과 같은 중요한 해법은 빠져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가동에는 15기가와트(GW) 전력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신형 원자력발전소 10기 이상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인데 정부의 ‘감(減)원전’ 기조하에서는 감당할 수 없다. 이미 확정된 신규 원전 2기 건설조차 국민공론에 부치겠다고 하는 판이다. 반도체 업계가 호소해 온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제 예외’도 지방에만 한정 적용하겠다는 발상 역시 탁상행정에 가깝다.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에서 더 오래 일해야 한다면 석·박사급 인력이 갈 리 만무하다. 외려 청년 인재의 수도권 쏠림을 더 심화시킬 게 뻔하다.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는 전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게 옳다.
국가 명운이 걸린 세계 반도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본과 인프라, 인재 양성 삼박자가 다 맞아야 한다. 700조원 이상의 돈을 쏟아부어도 전력·용수 등 인프라와 인력 뒷받침 없이는 아무 소용이 없다. 주 52시간 예외 적용과 신규 원전 등 전력 확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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