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범죄를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심판’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
권김현영 | 여성현실연구소장
최근 한 배우의 소년범 전력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성폭력특별법도 없었고 성범죄 인식도 낮았으며, 특히 10대 성범죄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관대했다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그러나 이 기억은 여러 층위에서 사실과 어긋난다. 문제는 관대했는지 여부가 아니라, 당시 성폭력이 무엇의 문제로, 누구의 이름으로 말해졌는가에 있다. 그 배우의 가해 사실을 옹호하거나,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과 처벌이 이미 충분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전두환 정부는 쿠데타로 탈취한 권력의 정당성을 보완하기 위해 강력한 치안 정책을 내세웠다. 1980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을 통해 강도·강간에 중형 선고를 가능하게 만들고, 실제로 강도강간범에 사형과 무기징역을 잇달아 구형했다. 강도강간죄는 ‘인명을 경시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흉악범죄’로 규정되었고, 주거지역을 배회하는 ‘불량배’에 대한 선제적 단속이 정당화되었다. 이때 법이 지키고자 한 것은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이라기보다 ‘정상 가족’의 질서였다. 전형적인 서사는 “밤중에 집에 침입한 남성이 남편 앞에서 아내를 강간해 가정을 파괴했다”는 이야기였고, 그 밖의 성폭력, 특히 피해자의 ‘행실’이 문제 삼아질 수 있는 사건들은 공적 문제로 구성되지 않았다.
1988년 출범한 노태우 정부는 권위주의 정권과의 단절을 내세우며 ‘보통 사람’을 표방했지만, 1990년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계획이 폭로되면서 정권의 정당성은 다시 흔들렸다. 같은 해 선포된 ‘범죄와의 전쟁’은 바로 이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때 새로 등장한 말이 ‘민생치안’이다. 여기서 표적이 된 것은 가정파괴범, 파렴치범, 조직폭력배였고, 성폭력 가해자는 이 범주 안에서 다뤄졌다. 언론 보도에서 특히 두드러진 것은 10대 남성들의 집단 성폭행 사건이었다. 성폭력은 범죄 은폐나 금품 갈취를 위한 협박 수단으로 그려졌고, 비행의 원인은 ‘성 해방 풍조’와 ‘음란 비디오’에 덧씌워졌다. 한강변과 야산에서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했다는 소년들의 이야기는, 이들을 가정과 학교에서 이탈해 도시를 배회하는 위협적 집단으로 상상하게 만들었다.
국가가 앞장서 소년범을 ‘박멸해야 할 사회악’으로 규정한 바로 그 지점에서, 범죄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결정적으로 전환된다. 그 이전까지, 적어도 이론의 수준에서는 범죄 청소년을 빈곤, 가족 해체, 교육 실패, 지역 격차가 낳은 사회 문제의 결과로 이해하는 시선이 존재했다. 가해 청소년은 구조가 만들어낸 ‘사회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범죄와의 전쟁’을 거치며 소년범은 사회 전체를 피해자로 만드는 가해자로만 호명되기 시작한다. 일본 사회의 치안 문제를 연구한 세리자와 가즈야는 이를 ‘사회의 피해자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회가 스스로를 언제든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거대한 피해자로 상상하면서, 소년범은 ‘사회가 낳은 아이’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적’으로 재규정된다. 이 변화는 한편으로는 피해자의 권리를 중시하는 진전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범죄를 낳는 사회 구조를 문제 삼는 목소리를 위축시킨다. 이처럼 범죄 청소년이 사회 구조의 산물이라는 인식은 빠르게 밀려나고, 가해자 개인에 대한 분노와 사적 제재 욕망이 정당화되는 감정정치가 중심 무대로 올라온다. 피해자의 고통을 말하는 일은, 사회를 바꾸자는 요구가 아니라 형량을 높이고 응징을 강화하자는 요구로 수렴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진다.
이제 다시 처음의 논쟁으로 돌아가 보자. 1990년대 초반에는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낮았고, 10대 성범죄에는 사회가 관대했다는 말은,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이 실제로는 성폭력을 강력한 처벌과 치안 강화의 명분으로 사용해왔다는 사실을 가린다. 당시 정권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소년범을 사회를 위협하는 ‘괴물’로 조형했다. 다만 그 엄벌의 칼날이 성폭력의 구조적 원인인 젠더불평등과 여성에 대한 폭력을 한때의 치기로 치부하는 남성 문화를 겨누지 않고, 정권의 입맛에 맞게 선별된 ‘비행 청소년’이라는 표적만을 향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피해자의 권리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분명한 진전이다. 그러나 이제 질문은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로 옮겨져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피해자의 권리와 구조적 변화라는 두 축을 함께 말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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