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사라지는 이론법학①
학생 삽화 /사진=이지혜 디자이너 기자 |
"법치주의의 붕괴 이런 말 많이 하잖아요. 요새 딱 그렇다고 보거든요. 이론법학에 대한 이해와 공부가 줄어들면서 그런 현상이 더 많이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변호사 단체 회장을 역임했던 한 법조계 원로가 최근 학생들이 법이나 정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나 충분한 고민을 하지 않고 법적인 기술만 배우고 익히고 있다며 한 말이다. 법철학 등 이론법학 기피 현상이 장기화하고 있다. 법조계는 악영향을 경고한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법철학을 졸업에 필요한 필수과목으로 정한 곳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로스쿨은 법철학 등 이론법학 전공 교수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철학이 개설 과목 중 하나이나 실제로 개설돼 학생들이 듣는 경우는 드물다. 한 지방대 로스쿨은 2년 전 수강률 저조를 이유로 법철학과 비교법 수업을 폐강했다. 서울 소재 한 로스쿨에 다니는 학생은 "법철학 과목을 수강하려 했는데 개설조차 되지 않았다. 근본적 고민을 하는 과목들이 실용적이지 않아 개설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9년 로스쿨 제도가 처음 도입될 당시에는 '다양한 인적 구성의 전문적인 법조인 양성,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기치 아래 이론법학의 중요성이 꽤 강조됐으나 금세 학생들 관심에서 멀어졌다. 로스쿨 입학의 목적이 곧 변호사시험 합격이어서다. 한정된 시간에 많은 양의 과목들을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이론법학 과목은 사치가 됐다.
실제 변호사시험 응시자는 민사법(민법·상법·민사소송법), 형사법(형법·형사소송법), 공법(헌법·행정법)에 추가로 선택법 한 개를 선택해야 한다. 선택법 과목엔 국제법·국제거래법·노동법·조세법·지적재산권법·경제법·환경법 등 전문적 법률 분야만 포함된다.
변호사시험 경쟁률이 높아지면서 이론법학 경시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변호사시험에 원서를 접수한 인원은 2012년 1698명에서 계속 늘어나 △2024년 3763명 △2025년 3757명으로 불어났다.
사법고시가 있던 시절에는 이론법학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법학대학 학부가 있었기에 이론법학 수업이 상대적으로 많이 개설됐다. 또 사법시험에서 선택과목으로 이론법학을 선택할 수 있었다. 실무 중심으로 진로를 정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법 이론 중심으로도 진로를 정할 수 있었던 환경이었던 셈이다.
김중권 중앙대 로스쿨 교수는 "최근 변호사시험에 올인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서 법학을 학문으로 인식하고 발전시키려는 문제인식이 급격히 약해지는 경향이 있다"며 "AI 시대에 '법학'을 어떻게 교육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한 로스쿨 교수는 "이론법학을 공부하면 당연히 좋겠지만 학생들이 이론법학을 공부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 비해 연구자의 길을 걷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면서도 "요즘처럼 변호사시험 경쟁률이 높아지고 있는 시기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마음에 여유가 없기도 하다"고 했다.
이론법학 경시 현상은 법조인 역량 및 국제 경쟁력 약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변호사시험에 이론법학 과목을 추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한국은 로스쿨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외 선진국과 비교해 교육 커리큘럼 등이 단순한 측면이 있다"며 "교육방식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진솔 기자 pinetree@mt.co.kr 이혜수 기자 esc@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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