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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산은 기계가, 분배는 국가가
미래에 나타날 인공지능(AI) 기반 사회주의의 개념은 기존의 사회주의와 크게 다르다. 과거의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계급 해방이라는 이상을 중심에 둔 이념적·철학적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장 |
◇ 생산은 기계가, 분배는 국가가
미래에 나타날 인공지능(AI) 기반 사회주의의 개념은 기존의 사회주의와 크게 다르다. 과거의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계급 해방이라는 이상을 중심에 둔 이념적·철학적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그린 사회주의·공산주의 비전은 인간 해방과 인본주의를 기치로 했지만, 실제 20세기 사회주의 국가는 계획경제의 실패, 정보 부족, 관료주의, 인권 침해 등으로 무너졌다. 이 체제는 방대한 경제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처리할 기술이 없었고, 복잡한 경제를 중앙집중식 계획으로 통제하려다 오히려 비효율과 결핍을 양산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핵심 인프라가 되는 미래 사회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이미 '기계'와 '네트워크'가 사회 구조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있다. 생산 현장에는 로봇과 자동화 설비가, 유통·금융·물류·에너지 관리에는 알고리즘과 데이터 플랫폼이 들어와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전통적 의미의 국유화 논쟁보다 더 본질적인 쟁점이 등장한다. 바로 데이터의 사회화와 자동화로 인한 초과 수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이냐는 문제다. 누가 데이터를 소유하고, 누가 자동화 시스템에서 나오는 생산성 향상의 과실을 가져갈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새로운 'AI 사회주의' 논의의 중심이 된다.
기본적으로 인공지능이 만들어낼 미래 사회의 구성 요소는 다음과 같다.
첫째, AI와 로봇이 전체 생산의 90% 이상을 담당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공장 자동화, 자율주행 운송, 물류창고 로봇, 챗봇 고객센터, 알고리즘 거래, 코드 자동 생성, 콘텐츠 생성 도구 등은 인간이 하던 상당수의 업무를 대체하거나 보조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가속되면 인간은 육체노동뿐 아니라 많은 영역의 지적 노동에서도 점차 해방될 수 있다. 인공지능 탑재 로봇과 인공지능 비서는 가사 노동, 운전, 다양한 사무 작업, 심지어 기초 연구·분석 업무까지 수행하게 될 것이다.
둘째, 인간은 과거처럼 '노동시간을 투입하고 임금을 받는 방식'만으로 소득을 얻는 구조에서 벗어나게 된다. 임금 노동 중심의 소득 모델은 축소되고, 데이터 제공, 창작, 기획, 시스템 설계, 관리·감독, 평판·신뢰 기반 서비스 등 새로운 형태의 소득원이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반복적이고 표준화할 수 있는 일들은 인공지능이 수행하게 되므로, 대규모 실업과 재취업 기회 축소라는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수 있다. 단순 재교육 프로그램만으로는 이 격차를 해소하기 어렵고, 장기적인 구조적 실업이 상시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인간은 여전히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최종 주체로 남아야 하므로, '어떻게 소득을 보장하고 소비 여력을 유지할 것인가'가 핵심 정책 과제가 된다.
셋째, 국가는 AI가 만들어낸 부가가치를 '기술 배당' 형태로 국민에게 분배한다는 시나리오가 등장한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기본소득, 로봇세, 데이터 배당 등 다양한 실험과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일부 경제·사회학자들은 "데이터와 자동화 시스템이 새로운 생산수단이라면, 그 수익 일부를 사회 구성원에게 돌려주는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는 매우 사회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어 기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대량 실업과 재취업 실패로 인해 노동시장 밖에 머무르는 인구가 급증하면, 단순한 복지 차원이 아니라 사회 안정과 시장 유지 차원에서라도 일정 수준의 기술 배당·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넷째, 그런데도 시장 자본주의는 혁신과 경쟁의 영역에서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관점이 힘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거대 플랫폼과 테크 기업 간의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혁신적인 기술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새로운 제품·서비스·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동력이 없다면, 기술 발전과 생산성 향상도 정체되기 때문이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 실패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정치권과 관료 조직이 경제를 세세히 계획하고 통제하는 과정에서 민간의 창의성과 경쟁을 억눌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지나치게 중앙집중화된 계획경제, 지도자의 이념과 감에 의존한 의사결정은 자원 배분 실패와 비합리적 투자, 심지어 전쟁과 같은 비극적 선택으로 이어져 국가의 몰락을 초래했다. 이런 사례를 보았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공정 경쟁의 시장 자본주의 시스템은 여전히 강력하게 존재해야 한다는 인식이 유지될 것이다.
다섯째, 인간의 가치는 '노동'이 아니라 '의미·관계·창조성'에서 발생한다는 가정이 힘을 얻게 된다. 지금까지 인간 사회에서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평가는 크게 그가 제공하는 노동의 종류와 양, 그것이 만들어내는 부의 크기에 의해 결정되었다. 지적 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어느 직종에 종사하느냐, 얼마만큼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느냐에 따라 계층이 나뉘었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인공지능 탑재 로봇들이 대부분의 육체노동과 상당 부분의 정형화된 지적 노동을 대체하게 된다면, 기존의 노동 기반 계급 구조는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 이때 새롭게 형성될 계급 구조는 데이터·자본·기술에 대한 접근성, 네트워크 영향력, 창의성과 공감 능력,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드는 능력 등으로 재편될 수 있다. 철학자와 미래학자들은 이미 "노동 없는 사회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자기를 증명하고 의미를 찾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결국 앞으로 우리가 맞이하게 될 새로운 사회 모델은 '시장 없는 과거의 이념적 유토피아 사회주의'가 아니라, '노동이 축소된 상태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자본주의적 시장' 위에 금융·데이터·자동화 시스템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구조에 가까울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 모델의 토대 위에 사회주의적 분배·관리 시스템이 일부 접목되는 형태다. 인간은 지금껏 보지 못한 수준의 생산성을 경험하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부를 통해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 동시에 그 부의 일정 부분을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적극적 사회주의적 메커니즘이 도입되어, 기술이 만든 이익을 사회 전체가 나누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 알고리즘 계획경제와 분산적 중앙화
데이터와 AI의 발전은 국가가 경제를 정교하게 계획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과거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은 중앙에서 생산량·가격·투자 계획을 짜는 계획경제를 시도했지만, 실제로는 정보 부족, 예측 오류, 관료적 비효율, 시장 신호의 무시, 국유화에 따른 책임 회피 등으로 인해 실패했다. 수억 명의 수요와 공급, 각 지역의 상황과 선호, 기술 발전 속도 등을 중앙의 인간 관료가 파악하고 조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AI 기술의 특징 중 하나는, 방대한 실시간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요·공급·에너지 흐름·물류 경로 등을 예측하고 최적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전력망, 교통·물류, 온라인 광고 입찰, 재고 관리 등에서 알고리즘 기반 최적화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런 기술이 더욱 고도화되면, 새로운 형태의 '알고리즘 경제'가 가능해진다. 인공지능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과거 국가 주도의 예산 편성과 자원 배분이 가지고 있던 비과학성과 비효율을 상당 부분 개선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지은 중요 요인 중 하나는, 정치 지도자들이 이념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내린 비과학적 경제·전쟁 결정이었다. 어떤 산업에 자원을 몰아줄 것인지, 어떤 인프라를 깔 것인지, 다른 국가와 전쟁을 할 것인지 같은 결정들은 종종 데이터와 근거보다 권력투쟁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우되었다. AI 기반 경제 시스템은 이런 결정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다양한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고 리스크를 정량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예측 가능한 바보짓'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인공지능을 토대로 운영되는 경제 시스템이 반드시 과거처럼 국가가 모든 것을 완전히 통제하는 중앙집중 구조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곳곳에 분산된 AI 노드가 서로 연결되어 경제를 조율하는 '분산적 중앙화'(distributed centralization) 형태가 유력하다. 중앙에 하나의 슈퍼컴퓨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산업·조직 단위의 AI 시스템이 데이터를 공유하고, 공통 프로토콜에 따라 조정되는 구조다.
블록체인과 웹3.0 기술은 이러한 분산적 중앙화 구조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으로 거론된다. 블록체인은 중앙 기관 없이도 거래 내역을 투명하게 기록하고, 스마트 계약을 통해 자동화된 규칙 집행을 가능하게 한다. 웹3.0은 데이터와 플랫폼의 소유권을 보다 분산시키는 인터넷 패러다임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들이 AI와 결합하면, 특정 국가나 기업이 모든 데이터를 독점하지 않으면서도, 분산된 노드들이 공동으로 경제를 최적화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경제 시스템이 등장할 수 있다.
이 모델에서는 국가·AI·시장·시민이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성한다. 국가는 기본 규칙과 윤리·안전 기준을 설정하고,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원 배분과 효율성을 최적화하며, 시장은 혁신과 경쟁의 장을 제공하고, 시민은 데이터 제공자이자 감시자, 그리고 분배의 수혜자이자 참여자로 기능한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자본주의 vs 사회주의'라는 이분법은 점점 의미를 잃어갈 가능성이 크다. 자본주의적 생산 모델의 토대에 사회주의적 관리·분배 시스템이 접목된 하이브리드 구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미래는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데이터 소유권, 프라이버시, 알고리즘 편향, 빅테크 독점, 민주적 통제 장치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AI 기반 사회주의든, 알고리즘 계획경제든, 결국 그 방향과 내용은 지금 우리가 어떤 제도와 규범을 설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기계가 생산을 떠맡는 시대일수록, 분배와 정의의 문제는 더 정치적이고 더 인간적인 주제가 될 것이다. (4편에서 계속)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 미국 컬럼비아대ㆍ오하이오주립대ㆍ뉴욕 파슨스 건축학교 초빙교수 역임 ▲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 현대자동차그룹 서산 모빌리티 도시개발 도시 컨설팅 및 기획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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