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비수도권 반도체 단지에 한해 주52시간 근로제 적용 예외를 허용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또 2047년까지 700조 원 이상을 투입해 반도체 생산 공장(팹) 10기를 신설하고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의 매출을 10배 끌어올려 반도체 글로벌 2강으로 도약한다는 구상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대규모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금산분리 규제도 완화해 자금 확보에 길을 터준다는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인공지능(AI) 시대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 보고회’에서 관계부처로부터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대책을 보고받았다.
정부는 우선 향후 22년 안에 총 700조 원 이상을 투입해 반도체 생산 공장 10기를 신설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를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클러스터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신경망처리장치(NPU), 지능형메모리(PIM) 등 AI 특화 반도체 기술 연구개발(R&D)에 예산을 집중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또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기업들이 자금을 원활하게 융통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을 주문하기도 했다.
취약점으로 지적돼온 시스템반도체와 소재·부품·장비 생태계 강화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현재 글로벌 점유율이 1% 남짓한 팹리스 산업 규모를 10배 확장하고 광주·구미·부산을 잇는 남부권 반도체 벨트를 조성한다.
반도체 기업들은 전력 문제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며 신속한 인프라 구축을 요청했다.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용인반도체산단 전력 현황에 대해 “총 9GW 중 6GW가 확보됐고 남은 3GW는 기후에너지환경부와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고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6GW 중 3GW가 확보됐다”고 말했다. ▷본지 11월 24일자 1·3면 참조
정부가 내놓은 반도체 산업 전략은 ‘메모리 초격차 유지, 팹리스(설계) 추격’으로 요약된다. 시장점유율과 기술 수준에서 1위를 점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산업은 전방위 투자로 현재 지위를 지키고 팹리스 산업은 부문별 연계를 강화해 산업 규모를 대폭 키우는 방식이다. 여기에 반도체 설비를 전국으로 분산해 반도체 산업이 주도하는 AI 혁명의 성과를 전국에 골고루 나눠준다는 것이 정부 구상의 골격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경우 비수도권의 연구직에 한해 주52시간 근로제 예외 적용을 허용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엔비디아 등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려면 밤낮없이 연구해도 모자란다는 업계의 요청을 받아들이되 지방 투자라는 단서를 단 것이다.
산업통상부는 지난해 기준 매출액이 23억 달러에 불과했던 팹리스 산업 규모를 10배 확대해 반도체 세계 2강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팹리스는 반도체 생산 공장(팹) 없이 칩 설계·개발만 담당한 뒤 생산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에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이 앞서고 있는 메모리반도체는 전용 팹을 갖춘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이라면 팹리스는 사용 목적에 맞춰 갖가지 반도체를 만들어내는 ‘다품종 소량생산’인 셈이다. 한국은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65.6%를 장악하고 있지만 팹리스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0.8%에 그치는 등 부진한 상황이다.
이에 산업부는 주문에 따라 칩을 설계하는 팹리스의 특성에 맞춰 수요 기업이 기술 개발을 유도하고 파운드리가 생산을 지원하는 협업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민관 합동으로 4조 5000억 원 규모의 12인치 40㎚(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상생 파운드리를 구축해 국내 팹리스 기업에 전용 물량을 할당한다. 최근 세계적인 파운드리 물량 부족 현상에 따라 한국 기업들이 물량을 맡길 공장조차 찾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다. 민관 합동 파운드리는 민간 52 대 공공 48의 지분 비율로 지방에 짓는 방안을 우선 검토하기로 했다.
여기에 기업 규모가 작아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기 어려운 중소 팹리스들을 대상으로 공공펀드를 조성해 통합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지적재산권(IP)을 가진 기업과 팹리스들을 하나로 묶는 지주사를 설립하고 이곳에서 기획과 마케팅을 공동 진행하는 방식이다.
국내 기업이 만들어낸 반도체칩에 대한 수요를 촉진하기 위한 대책도 내놨다. 우선 차량 제어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전력관리칩·통신칩 등 일명 ‘미들텍 반도체’에 대한 국산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력·통신·공공데이터센터 등에 쓰이는 반도체칩은 국산 제품을 우선 구매하는 제도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세계 1위를 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는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집행할 예정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이후 시장을 주도할 차세대 메모리 개발을 지원하고 전력효율 반도체는 물론 피지컬 AI의 핵심 부품인 화합물 반도체 연구개발(R&D)도 지원한다. 구체적으로 △차세대 메모리 2159억 원 △AI 특화 반도체 1조 2676억 원 △화합물 반도체 2601억 원 △첨단 패키징에 3606억 원을 투입한다. 2047년까지 반도체 분야에 대한 민관 투자는 총 7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인재 양성과 소재·부품·장비 생태계 강화에도 팔을 걷어붙인다. 현재 6개인 반도체 특성화대학원을 2030년까지 10개로 늘리는 한편 기존 반도체 대학원의 한계를 보완할 반도체 대학원대학 설립도 검토할 계획이다. 반도체 대학원대학을 통해 연간 약 300명의 인력을 배출하고 기업이 대학원대학 운영에 직접 참여하도록 해 반도체 밸류체인 전반에 걸친 석박사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다. 글로벌 반도체 IP 설계 기업 암(Arm)과 협력한 ‘Arm 스쿨’도 내년부터 운영한다. 정부는 이 같은 정책을 지휘할 대통령 소속 반도체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약 2조 원 규모의 반도체 특별회계도 신설하기로 했다.
정부는 광주·부산·구미를 잇는 ‘남부권 반도체 혁신 벨트’를 만들어 반도체 산업 육성의 축을 수도권에서 전국으로 확산한다는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남쪽 지방으로 눈길을 돌려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 달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물을 넓게 팠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지역별로 보면 광주는 첨단 반도체 패키징 기지로 육성하고 부산에는 전력반도체 관련 기업이 집중 배치된다. 구미는 반도체 산업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소부장 단지로 육성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신규 반도체 등 첨단산업 특화단지는 비수도권에 한해 신규 지정하고 비수도권 반도체 연구 종사자에 한해서는 주52시간 근로제 적용 예외를 인정하는 등 유연한 노동시장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반도체 산업 육성 과정에서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소유 규제 등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 기업들이 자금을 원활히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투자 자금 조달에 대한 기업들의 문제 제기가 일리 있다”며 “금산분리는 독점 폐해를 막겠다는 것인데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첨단산업 분야의 경우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재현 기자 joojh@sedaily.com조윤진 기자 jo@sedaily.com전희윤 기자 heeyo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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