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김기덕 /뉴시스 |
영화감독 김기덕(1960~2020)은 1996년 영화 ‘악어’로 데뷔했다. 한강변에서 노숙하며 ‘막 가는 인생’을 사는 ‘악어’라는 별명의 남자가 주인공이다. 신인 감독이 만든 저예산 데뷔 영화치고는 이례적으로 주목받았다. 조선일보에 기자와 평론가의 영화평이 잇달아 실렸다. 한 번은 호평, 또 한 번은 혹평이었다.
“이 영화는 대기업 영화의 4분의 1 수준인 3억5천만원 정도로 만들어졌으나 ‘큰 영화’보다 진부하지 않다. 긴장을 놓치지 않고 적절한 유머를 섞어가며 관객을 붙들면서 ‘쓰레기에서 꽃피는 장미송이’들을 보여준다. 신인 작품으론 상당한 솜씨다.”(1996년 11월 16일 자 17면)
“기존의 영화와는 뭔가 달라야 한다는 인식,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은 새로움을 향한 실험을 뒷받침하는 힘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무르익지 않으면 오히려 스스로를 가두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 ‘악어’는 그 함정 속에 있다.”(1996년 11월 23일 자 25면)
김기덕 인터뷰. 2004년 9월 23일자 A23면. |
김기덕은 “충무로 주류와는 철저히 다른 제작 방식과 화술을 지닌 ‘이단아’”(2000년 4월 17일 자 36면)로 평가됐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여성 학대 장면과 파격적인 묘사에 눈살이 찌푸려진다는 반응이 많았다. 정작 김기덕은 당당했다. 영화 기자가 던지는 공격적 질문을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어둠을 그리지 않고 어떻게 밝음을 표현할 수 있나. 내 여성 주인공들은 몸을 파는 게 아니라 몸으로 사는 것이다.”(2000년 4월 17일 자 36면)
김기덕 영화는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를린·베네치아·칸에서 모두 본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인으로는 유일하다.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감독상), 같은 해 ‘빈집’으로 베네치아 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 2011년 ‘아리랑’으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받았다. 2012년 ‘피에타’로 다시 베네치아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2006년 8월 22일자 A27면. |
김기덕은 자신의 영화가 국내에선 혹평을 받고 흥행이 되지 않는 점에 자주 불만을 터뜨렸다.
“우리 평론가나 관객도 스타나 스케일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영화를 볼 수 없는가. 이 영화에 대해 내가 적어도 50%의 지지를 기대하는 것도 옳지 않은가. 내 영화를 증명하기 위해 외국에 나와 평가를 얻어야 하는 것, 이건 아니다.”(2004년 9월 13일 자 A25면)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은 미국에서 32만명이 들었고, ‘빈집’은 프랑스에서 20만명 이상,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도 15만명 이상 봤다.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 관객이 들어줬으면 하는 게 과연 욕심이냐.”(2006년 8월 8일 자 A27면)
데뷔 10년인 2006년엔 감독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 영화 ‘괴물’에 대해 혹평을 한 일이 계기였다. 김기덕은 TV 토론에서 “한국 영화와 관객의 수준이 최정점에서 만난 영화가 괴물”이라고 언급했다가 네티즌의 집중 비난을 받았다. ‘김기덕의 사죄문’이란 장문의 이메일을 연합뉴스에 보내 “내 영화는 쓰레기”라며 “한국 영화계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2020년 12월 12일자 A12면. |
김기덕은 “이번 사태를 통해 제 자신이 한국에서 살아가기 힘든 심각한 의식 장애자임을 알았다”며 “저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기형적으로 돌출해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임을 알았다”(2006년 8월 22일 자 A27면)고 자학했다.
‘감독 은퇴’는 자신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2017~2018년 ‘미투’ 폭로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여배우에 대한 성폭행 혐의가 잇달아 쏟아졌다. 이전부터 소문은 있었다. 2004년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받았을 때 최보식 기자는 ‘떠도는 루머’에 대해 질문했다. 김기덕은 “어떻게 그 따위의 질문을 용감하게 꺼낼 수 있느냐”고 분노했다. “나 자신의 인격뿐만 아니라 같이 작업한 배우들을 모욕하는 것이다. 굉장히 위험하고 의도가 불순하다.”(2004년 3월 5일 자 D18면)
2004년 3월 5일자 D18면. |
김기덕은 미투 이후 국내 활동을 중단하고 주로 해외에 체류했다. 2020년 12월 11일 옛 소련 유럽 국가 라트비아에서 코로나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소식이 전해진 후 일부에서 추모도 있었지만 “만일 누군가 사람들에게 그토록 끔찍한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를 기리는 건 잘못된 일”(‘기생충’ 자막을 번역한 달시 파켓)이란 의견이 더 힘을 얻었다.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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